“발자취마다 하나님 동행하심에 감사…새로운 70년 향한 다짐”
“발자취마다 하나님 동행하심에 감사…새로운 70년 향한 다짐”
  • 유영대
  • 승인 2019.02.0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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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해병대 교회 70주년 기념예배 10일 서울 영등포구 해군중앙교회서

 

1949년 국군 최초 용산 군인교회와 예배 후 교인들 모습. 해군중앙교회 제공
1949년 국군 최초 용산 군인교회와 예배 후 교인들 모습. 해군중앙교회 제공

 

해군·해병대 70주년 기념예배가 10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구 가마산로 해군중앙교회(정기원 목사)에서 열린다. 행사는 1부 예배, 2부 창립 70주년 기념 축하, 3부 세미나, 식사 및 친교 순으로 진행한다. 제29대 해군군종병과장 이기원 목사가 ‘더불어 사는 즐거움’(전도서 4:9~12)이란 제목으로 전할 예정이다.

김기홍(근속 55년)장로와 박병옥(근속 65년) 권사는 해군·해병대교회 최장기 근속 감사패를 각각 받는다. 또 해군·해병대교회 최장기 후원교회인 구룡포침례교회(35년 후원)는 감사패를 받게 된다. 한국군종목사단장 노명현 목사와 공군군종목사단장 이일우 목사는 각각 축사와 격려사를 전한다. 세미나에서 권오훈 목원대 교수는 ‘사회적 교회’를 주제로 강연한다.

이날 행사는 해군·해병대교회 총회, 해군군종목사단이 주관하고 있다. 해군·해병대교회 총회는 초청의 글에서 “한국교회 군선교 사역은 군목제도 수립 2년 전인 1948년 9월 15일, 당시 이화여고 교목이던 정달빈 목사가 해군중위로 임관하여 군목업무를 맡은 것을 시작점으로 보고 있다.

또 “최초의 군인교회는 1949년 2월 5일 해군과 육군 가족 15명이 모여 서울 용산의 해군중령 김대식의 관사에서 예배 드린 날을 모체로 하고 있다. 그 최초 군교회의 역사는 지금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해군중앙교회가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해군 최초의 교회당인 1950년대 경남 진해 해군통제부교회 전경.
해군 최초의 교회당인 1950년대 경남 진해 해군통제부교회 전경.

 

이어 “해군, 해병대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감당하여 명실상부한 군인교회가 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이웃과 세계에서 인정받는 교회가 될 것”이라며 “70주년을 기념하는 해군해병대 교회는 앞으로 70년을 소망하며 변함없는 하나님 사랑, 나라사랑, 이웃사랑을 다짐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초청의 글 전문이다.

軍교회 70주년!
군인교회의 시작, 영등포 해군중앙교회에서 2월 10일 주일 해군해병대 교회 70주년 기념예배 드려
하나님 사랑, 나라사랑, 이웃사랑의 本을 보인 해군해병대 교회의 70년 航海!
발자취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에 대한 감사와 새로운 70년을 향한 출항 다짐
최초의 군인교회는 해군중령 軍 관사 33호에서 해군과 육군 가족 15명이 모여 예배드림으로 시작

[본문]
한국교회 군선교 사역은 군목제도 수립 2년 전인 1948년 9월 15일, 당시 이화여고 교목이던 정달빈 목사가 해군중위로 임관하여 군목업무를 맡은 것을 시작점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최초의 군인교회는 1949년 2월 5일 해군과 육군 가족 15명이 모여 서울 용산의 해군중령 김대식의 관사에서 예배 드린 날을 모체로 하고 있다. 그 최초 군교회의 역사는 지금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해군중앙교회가 이어가고 있다.

따라서 올해는 해군·해병대 교회 창립 70년이 된다. 감사 기념예배가 2월 10일 주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해군중앙교회에서 드려진다.

아직 군목이 정식으로 파송되기전이었던 1949년 2월 5일, 해군본부 인사국장이던 김대식 해군중령의 용산 군인관사 33호에서 15명이 모여 예배드림으로 시작된 해군교회는 군의 최초 교회로 기록됐다. 그후 예배 모임은 지속돼 해군 최초의 교회당은 통제부교회(현 해군진해교회)로 해군의 모항인 경남 진해에 설립하게 되었다.

해군은 3군중 가장 먼저 군종제도와 군선교를 활발히 펼쳐나갔다.

 

한국군 군목의 효시 정달빈 목사

 

한국의 군종제도가 확립되어 갔던 시기는 6.25 전쟁 기간이었다. 정달빈 목사는 해군부인회의 도움으로 세워진 수산장에 교회를 세우기도 하였고, 해군어린이합창대를 인솔하여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많은 이들을 위로하였으며, 해병대 군목이었던 박창번 목사는 야전 천막교회를 마련하여 포화 속에서 복음을 전하며 기도하였다.

또한 전쟁으로 인하여 장애를 입은 상이군인들을 위한 상이군인기술교도소에 참여하여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먹고 사는 문제까지 돌보았다. 상이군인기술교도소 역시 믿음을 가진 해군부인회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컸다.

해군·해병대 교회에서 시작된 크고 중요한 군선교 조직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현 MCF(기독군인회, Military Christian Fellowship)의 전신으로 한국기독장교회(OCU Officer Christian Union)이다. 한국군 OCU 는 해병대 문희석 중령부터 1956년 시작되었다. 미 해병학교 유학한 바 있는 문희석 중령은 매주 성경공부 멤버 9명으로 우리 군 최초 OCU를 결성하고 2년 후엔 전군(全軍) OCU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처럼 최초의 군목, 최초의 군교회, 최초의 기독군인회 조직 등 군선교의 중요한 흐름의 시작은 모두 해군과 해병대에서 시작되었다.

군조직의 특성상 장교들의 영향력은 상당히 중요하다. 장교들이 신앙을 가지고 부대를 지휘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해군은 함정을 타고 다녀야 되는데, 그 함정 마다 목사가 모두 배치될 수 없기에 해군은 기독장교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

어찌보면 해군 교회의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O.C.U가 해군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원일다락방은 그러한 필요성과 복음을 향한 열정으로 세워졌다. 해군 기독 장교들을 신앙으로 훈련하고, 영적인 재충전과 새로운 소망을 불어 넣는 곳, 뿐만 아니라 기독 장교들의 전문성과 더불어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체를 이룬 곳이 원일다락방이었다.

전국복음화운동에서 시작된 전군신자화운동은 해군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인 1종교 갖기 뿐만 아니라 진중세례식으로 인하여 많은 신자들을 얻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하여 해군의 중요한 교회들이 건축되었다. 이 기간은 해군 안에서 해군교회의 내실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해군 밖으로 주변의 이웃을 향한 사랑을 전하기도 하였다. 수병의 집과 화랑원, 그리고 학교와 유치원이다.

특히 군선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부대 내 일반학교였던 동해에 위치한 1해역사(1함대사령부의 전신)에 세워진 일심학교는 생명을 바친 김수남 목사의 희생으로 인하여 학교가 세워짐은 물론 많은 학생들이 배움의 기회를 얻었다. 1986년 2월 11일 일심고등학교 9회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학교는 사라졌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합하여 총 859명의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여 꿈을 펼쳤다.

해군의 목사들은 이웃의 필요를 채우고 나라의 아픔과 전 세계의 아픔에도 동참하였다. 전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던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사건 가운데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위기의 한 복판에서 장병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고, 태풍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필리핀의 재건을 위해 파견된 아라우 부대에도 함께하여 상처를 보듬고 위로하며 새 소망을 전하였다.

 

 

해군해병대 교회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한 교회였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며 사명을 감당한 교회였다. 그래서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수가 많아졌다. 이것은 예배당 안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나라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었다. 자신의 임무를 성실하고 정직하게 수행하여 인정을 받는 기독 장교들이 해군 교회를 섬겼고, 주변의 어렵고 힘든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무엇인가 도움을 주려고 열심히 노력하였다.

이런 해군해병대 교회의 역사에서는 다른 군교회에 비하여 3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 해군과 해병대 교회는 분명한 모델이 있다. 손원일 제독과 정달빈 목사이다. 손원일 제독을 생각하면 손정도 목사까지 그 범위 안에 들어간다. 독립운동가이자 교회를 사랑했던 손정도 목사의 모습은 고스란히 손원일 제독에 흘러들어 갔고, 해군을 창설한 손원일 제독은 이미 해군 전체에 있어서 큰 나무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는데, 이는 해군 교회에도 역시 훌륭한 모범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달빈 목사는 손원일 제독을 통하여 부르신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초창기 군종업무를 정착시키고 개척하였으며 군종 목사가 어떤 존재인지 확립하였다. 해군해병대 교회에는 가장 큰 자부심이자 넘어야 할 산이며, 끝까지 따라야 할 모범이 있는 것이다.

둘째, 해군·해병대 교회는 평신도 지도자를 키우는 교회이다. 앞서 언급한 데로, 해군은 함정이라는 육군과 공군이 가지지 않는 특수한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한다. 일단 함정을 타고 나가면 육지와 연결이 끊어져서 군종 목사가 지원할 수 없게 된다. 목사가 없는 함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목사 같은 평신도가 반드시 필요했다. 원일다락방은 그런 이유에서 탄생하게 되었고, 원일다락방을 통하여 우수하고 신앙의 해군 장교들이 배출되었고, 최근에는 부사관다락방을 통하여 신앙의 부사관들이 배출되고 있다. 지금도 해군 교회는 타군에 비하여 초급 기독 장교들을 키워내는 일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셋째, 해군·해병대 교회는 군인교회의 본래적 목적인 하나님과 나라를 위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의 이웃을 돌보는 교회였다. 그것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지만 구체적으로 교회와 군부대의 담을 넘어 실제적으로 섬기고 봉사하였다. 일심학교와 도서지에 세워진 많은 유치원들, 통제부 교회에서 운영하였던 화랑원, 합동결혼식과 많은 구제사업은 군부대의 테두리를 벗어나 진정으로 이웃을 돌보는 교회였다. 물론 이것을 국민을 위하는 군인의 사명과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는 부대로 바꿔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을 위하는 책임감과 사명을 넘어서 신앙을 동기로 삼아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섬기며 돌보았던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해군·해병대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와 신앙생활에 더욱 집중하고, 그것을 나라사랑과 이웃사랑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함정에서 예배를 인도할 수 있는 초급 기독 장교들을 길러내는 일에 열심을 내야하고, 부대 밖의 어려운 이들을 위로하고 섬기며 돌볼 수 있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 때, 해군·해병대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감당하여 명실상부한 군인교회가 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이웃과 세계에서 인정받는 교회가 될 것이다. 70주년을 기념하는 해군해병대 교회는 앞으로 70년을 소망하며 변함없는 하나님 사랑, 나라사랑, 이웃사랑을 다짐한다.

2019. 2.3

해군·해병대교회 총회

 

유영대 기자 (국민일보 종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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