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주년 종교개혁 기념, 아펜젤러 학술대회
505주년 종교개혁 기념, 아펜젤러 학술대회
  • 배하진
  • 승인 2022.10.25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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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로 거룩하게: 발도, 위클리프, 후스’ 주제/
박경수 박사, ““후스, 그리스도만이 교회 머리"/ 
후스, 루터보다 100여 년 앞서 교회개혁 주장/

【뉴스제이】 배하진 기자 = 505주년 종교개혁 기념일을 앞두고 '제2회 아펜젤러 학술대회'가 25일 오후 감리교신학대학교(총장 이후정) 백주년기념관에서 ‘진리로 거룩하게: 발도, 위클리프, 후스’라는 주제로 열렸다. 

제2회 아펜젤러 학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 두 번째부터 박경수·김인수·서종원 박사. ©장지동 기자
제2회 아펜젤러 학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 두 번째부터 박경수·김인수·서종원 박사. ©장지동 기자

이날 박경수 박사(장신대, 종교개혁사)는 ‘얀 후스의 「교회」(De ecclesia)에 나타난 교회개혁 사상’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박 박사는 “종교개혁을 말할 때 우리는 보통 루터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루터보다 100여 년 전에 이미 로마가톨릭교회를 비판하면서 교회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어 올린 인물이 바로 체코의 종교개혁자 후스”라며 “일찍이 루터는 ‘우리 모두는 후스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고백함으로써 자신이 후스의 정신과 사상을 이어받았음을 천명하였다”고 말했다.

박 박사는 “후스는 1400년에 로마가톨릭교회의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1401년부터 프라하에 있는 성 미가엘교회에서 설교하였고, 1402년부터는 베들레헴채플의 설교자가 되어 향후 10여 년 동안 약 3,000번 이상 설교하였다”고 했다.

박경수 박사가 발제를 하고 있다. ©장지동 기자
박경수 박사 

이어 “위클리프의 사상을 따르던 후스는 로마가톨릭교회와 입장을 달리했다. 1411년 후스는 파문 당했다”며 “공의회의 결정이 궁극적인 권위를 가지며, 교황이 교회의 머리라고 강조하는 후스의 반대자들의 주장에 맞서 후스는 진리의 유일무이한 원천은 성서이며,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고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결국, 1415년 7월 6일에 소집된 콘스탄츠 공의회 전체회의에서 후스는 이단으로 정죄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화형에 처해졌다”고 전했다.

그는 “후스의 「교회」는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의 내용으로 인해 후스는 결국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고, 화형에 처해졌다”며 “어떤 점에서 이 책이 여전히 필요한 것인가”라고 했다.

박 박사는 “후스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이시며,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반석이시다. 이것은 교회가 인간의 피조물이 아니라 성령의 피조물이라는 말”이라며 “행여 목사든 장로든 성도든 누구든지 교회의 주인 노릇이나 머리 행세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후스는 이 땅 위의 전투하는 교회는 '알곡과 쭉정이'가 섞여 있는 ‘혼합된 몸’(corpusmixtum)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을 따라 선택을 받은 예정된 무리라고 주장하였다”며 “그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니라 좁은 길을 순전한 믿음으로 걸어가는 제자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후 김인수 박사(감신대 조직신학)·서종원 박사(감신대 교회사)의 논찬에 이어 이후정 총장(감신대)의 축사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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