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관호목사 칼럼] 아버지의 이름으로 
  • 나관호 목사
  • 승인 2022.10.21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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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 목사의 행복발전소 189]

"아버지는 위대하다."/
"아버지 사랑은 묵직하면서도 세밀하다."/
"아버지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았다."/ 

【뉴스제이】 미국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김하성 선수의 경기를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NLCS 2차전입니다. 김하성 선수의 포스트시즌(PS)을 응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야구 경기를 보던 중 반복해서 관중석 화면에 어느 중년 남성이 반복해 나왔습니다. 전형적인 미국 아버지 모습이었습니다. 더구나 스쳐 가는 모습이 아니라 클로즈업이 되어서 여러 번 나왔습니다. 

그 남성의 주변을 보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관중석 같은데, 필라델피아 필리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습니다. 좀 궁금했습니다. 

유니폼을 두개 겹쳐 입은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으로’ 어느 한쪽 아들만 응원할 수 없기에 유니폼을 두 개 겹쳐 입고 경기를 관람한 것입니다.    ⓒ영상 캡처

그런 상황에서 5회에 김하성 선수가 필라델피아 필리스 투수 아론에게 선두 타자 안타를 쳤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그 중년 남성이 화면에 나왔습니다. 분명, 필라델피아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샌디에이고 관중석에 앉아 있는 필라델피아 팬 같아 보였습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9번 타자가 들어 섰고, 그는 시원한 안타로 김하성을 홈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런데 그순간 또 그 중년 남성이 또 화면에 잡혔습니다. 얼굴에 웃음이 없습니다. 주변의 파드리스 팬들이 환호하며 난리가 났습니다. 그렇지만, 필라델피아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 남성 얼굴은 기쁨과 환호가 없습니다. 

파드리스의 연속된 안타로 동점이 되었고, 필라델피아 투수가 교체되었습니다. 그 때도 그 중년 남성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저 사람이 누구지’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투수 아론 놀라의 아버지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김하성을 홈으로 불러들인 안타를 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포수이며 9번타자인 오스틴 놀라의 아버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서로 상대편 팀에서 형제가 경기를 하고 있고, 그것을 아버지가 직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고 있는 중계팀이 아버지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화면을 자세히 보니 그 남성, 그러니까 놀라 형제의 아버지는 유니폼을 두개 겹쳐 입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어느 한쪽 아들만 응원할 수 없기에 유니폼을 두 개 겹쳐 입고 경기를 관람한 것입니다. 그런데 화면에는 필라델피아 필리스 유니폼을 입은 장면이 나온 것은 작은 아들이 투수로 등판하면 '아버지의 이름으로' 재빠르게 유니폼을 바꿔 입었기 때문입니다. 유니폼을 겹쳐 입은 것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두 아들 모두를 응원하는 지혜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위대하다.’ 
‘아버지는 차별 없이 사랑한다.’ 
‘아버지 사랑은 묵직하면서도 세밀하다.’
‘아버지는 지혜롭다’
‘아버지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았다.’  

아버지 A.J. 놀라 씨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달콤 씁쓸했다”며 소감을 전했습니다. 

“경기에서는 둘은 형제가 아닙니다. 샌디에이고 선수이고, 필라델피아 선수일 뿐입니다. 다만  5회는 내 인생 최고의 이닝이자 최악의 이닝이었어요.”

그것은 큰아들 오스틴의 안타는 기쁨이었지만, 투수인 작은 아들 아론의 공을 안타를 만들었고 아론은 교체되었기 때문입니다.   

형과 동생 맞대결, 그것을 지켜본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동네 친구과 (뒷줄 가운데가 나)

그 순간 나는 기도로 사셨던 천국가신 믿음의 어머니와 아들을 그리도 사랑했던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주셨고 삼대 독자 아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끔직이도 사랑하셨습니다.

상진이 형네 누렁이가 내 다리를 물었을 때, 아버지는 나를 업고 슈퍼맨처럼 병원으로 데려가 주셨고, ‘오징어 게임’을 하다가 오른쪽 팔이 부러졌을 때도 조심스레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존 웨인의 서부 영화를 보다가 장총이 좋아 보여 장총 가지고 놀고 싶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당시 작은 돌맹이를 넣어서 쏘는 권총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부 영화에서 존 웨인이 말을 타고 총을 쏘다가 뛰어내려 엎드려 쏘는 모습에 반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장총을 사 달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틀 후, 아버지가 저녁에 퇴근하시면서 집에 장총을 들고 오셨습니다. 알고 보니 '아버지의 이름으로' 장총을 만들어 오신 것입니다. 돌을 넣어 나가게 하는 장총은 없다며 ‘아버지의 이름으로’ 만들어 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 사랑’은 묵직하면서도 세밀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 ‘아버지의 이름으로’, 우리들에게도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한일서 4:16)

우리 집은 스마트폰 찬송가 앱을 통해 24시간 찬양이 흘러나옵니다. 찬송가를 더 크게 틀어 놓고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며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다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앞에 엎드립니다.”

 

나관호 교수목사 (뉴스제이 대표 및 발행인 / 치매가족 멘토 / 말씀치유회복사역원(LHRM) 원장/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제자선교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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