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할까 두려워 65세 조기은퇴 결단”… 전별금 5억원도 거절
“안주할까 두려워 65세 조기은퇴 결단”… 전별금 5억원도 거절
  • 박유인
  • 승인 2019.01.0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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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환·동영상·전별금 없는 ‘3無 은퇴식’....허상봉 동대전성결교회 원로목사
목회 코칭 및 강연을 위해 ‘멘토리움’이란 이름으로 사업자등록
조기 은퇴를 하고 싶어도 경제적 여건이 준비 안 돼 못하는 목사 많다고

은퇴예식이나 화환, 전별금을 마다하고 조기 은퇴를 선언해 ‘조용한 퇴장’을 실천한 허상봉 (65) 동대전성결교회 원로목사. 허 목사는 이날 주일예배 설교를 끝으로 이 교회에서의 15년 목회 여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퇴임식도 따로 없었다. 허 목사가 설교를 한 뒤 몇 마디 소감을 덧붙인 게 전부였다.

​은퇴예식이나 화환, 전별금을 마다하고 '65세 조기은퇴' 선언.... ‘조용한 퇴장’ 실천한 허상봉 동대전성결교회 원로목사
​은퇴예식이나 화환, 전별금을 마다하고 '65세 조기은퇴' 선언.... ‘조용한 퇴장’ 실천한 허상봉 동대전성결교회 원로목사

단정히 넘긴 백발에 온화한 미소를 띤 그는 자신 때문에 교회 분위기가 고루해질까 염려돼 조기 은퇴를 결단했다고 한다. 40~50대 때 가졌던 패기와 박진감이 줄어드는 게 느껴지면서 성도들의 신앙도 활력이 떨어질까 걱정됐다는 것이다. 요즘 60대는 예전과 다르게 젊지 않느냐는 생각에 대해  허 목사는 “요즘 트렌드는 고령화 사회라고, 60대면 아직 건재한 나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며 “예전에 비해 타성에 젖기 쉽고 교회 조직도 노후화된다. 교회는 사회에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도리어 안주할 것 같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50세 때인 2003년 동대전성결교회에 청빙돼 담임목회를 했다. 출석 성도 1500여명, 예산 규모 20억대로 대전에서 손꼽히는 대형교회였다. 그는 목회 당시 매년 성탄을 앞두고 지역 저소득층에게 사랑의 쌀을 전했다. 시내에 대형 성탄트리를 세우는 데도 주도적으로 후원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레바논, 카자흐스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에 병원과 대학을 짓는 등 해외선교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수년 내 빚 없이 교회 건축을 할 수 있도록 예산 계획도 꼼꼼히 준비해 둔 그였지만 정작 자신의 은퇴 계획은 2주 전에 당회에 알렸다. 장로들은 ‘한 주간 기도해보고 결정하라’고 만류했다. 그럼에도 이튿날 1년 전 마련해 둔 천안의 한 임대아파트로 이사했다. 퇴임 후 거주지를 물색하다 찾은 곳으로 연고가 전혀 없는 지역이었다. 후임 목사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일부러 결정한 곳이었다. “주변 지인에겐 15~16년 전부터 이야기 해왔지만 교회엔 2주 전에 말했다.

그는 당회에 ‘3무(無) 은퇴식’을 제안했다. 은퇴를 위한 특별 순서와 화환, 현수막이 없는 은퇴식이었다. 목회 15년을 압축한 동영상 제작도 허락하지 않았다. 당회는 전별금 5억원을 전달하겠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거절했다. 담임목사가 은퇴한다고 교회에 큰 부담을 줄 수 없으며 자녀가 장성해 밥벌이를 하므로 임대아파트와 생활비만으로 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추대식을 해야 원로목사로 공인된다’는 교단 헌법에 따르기 위해 지난 30일 ‘3무 은퇴식’을 약식으로 다시 열었다.

평소 하고 싶었던 검도를 배우며 건가을 만들고 있으며, 35년간 쌓인 목회 노하우를 전국 농어촌교회 목회자에게 전수할 계획이다. 목회 코칭 및 강연을 위해 ‘멘토리움’이란 이름으로 사업자등록도 했는데, 이 또한 원로목사의 사역에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사전에 조용히 해 둔 것이다.

허 목사는 ‘조기 은퇴’가 목회자 은퇴 문화에 있어 절대적 원칙이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성경 속 여호수아나 갈렙처럼 나이가 있어도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경우가 있으므로 획일화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허 목사는 “조기 은퇴를 하고 싶어도 경제적 여건이 준비 안 돼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주님께 기도하는 동시에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지 몇몇 사람을 잣대로 결정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5년간 다양한 규모의 교회를 맡았지만 목회에서 중요한 덕목은 ‘화목’”이라며 “은퇴를 앞둔 목회자가 교회를 배려하고 성도가 애정을 담아 은퇴 목회자의 새 출발을 응원하는 문화가 생기길 바란다”고 전한다.

[본지 제휴사 국민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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