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칼럼] 모든 삶을 '예배'(service)로 살아야 한다
[은혜칼럼] 모든 삶을 '예배'(service)로 살아야 한다
  • 나관호
  • 승인 2018.11.24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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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 목사의 행복발전소 31]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예배(service)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봉사(service)며, 봉사(service)는 세상에서 몸으로 드리는 최고의 예배(service)다.
태초부터 예배와 일은 하나였습니다. 일과 예배, 이 두 행위가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다.

자동차 뒷바퀴의 라이닝 긁히는 소리가 들려 수리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동네 정비소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늘 고객이 없어 한가해 보이는 곳이라고 더더욱 매상을 올려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식당 앞에 주차를 하고 식사 후 정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정비소로 걸어가 가격 문의를 하고 30분 후 찾아오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정비소를 찾아갔습니다. 정비소 앞에 수리를 잘 할 수 있는 위치에 정차를 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내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본 사장님은 별 반응이 없어 보였습니다. 고객이 왔고, 다구나 약속한 고객인데 서비스 응대 태도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구석에 차 한대가 정비트랙에 올려져 있었는데, 그 자동차 주인이 오자 사장은 밖으로 나와서 그곳으로 걸어갔습니다.

날씨가 좀 쌀쌀해 차 안으로 다시 들어가 오래 기다린 나는 ‘여기만 정비소가 아니잖아. 관심 없고 서비스 태도가 엉망인데 다른 데로 가지 뭐.’라는 생각에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상식적으로 고객이 들어오면 나와서 맞아주고, 서로 인사하고 안내를 받는 것이 정상인데 그 정비소 사장은 이익이 적게 남는다고 생각한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서비스업이고,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업종인데 서비스 정신이 부족해 보였고, 일종의 기술 가진 자의 갑질(?) 같기도 했습니다. ‘저렇게 태도를 취하니 손님이 없나 보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 일과 예배는 하나입니다. (사진:노란가방의 작은 책꽂이) © 나관호

그래서 서비스라는 말에 대해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 ‘서비스’가 걸쳐 있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서비스’는 ‘봉사’라는 의미이니까요. 마트나 식당에 가도 서비스 정신이 필요하고, 동사무소나 시청에서도, 버스나 택시도, 학교와 정부기관에서도 서비스 정신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봉사(self-service), 병역(military service), 판매 후 서비스('after sales service), 봉사료(service charge), 의료봉사(medical services), 봉사단체(service club), 손질(service), 방송(broadcasting service), 유효수명(service life), 가동중(in service), 대체복무제(Alternative Civilian Service), 공급전압(service voltage), 관세청(Korea Customs Service), 외무직 공무원(foreign service), 가사노동직(domestic service), 교정본부(Korea Correctional Service), 공무원제도(civil service system). 심지어 교회 주보를 보면 ‘예배’를 ‘worship service’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영어로 ‘worship service’, ‘church service’, ‘service’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배’인데 ‘서비스’(service)가 붙는 것은 ‘봉사’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비스’(service)는 영어권 나라에서는 더더욱 광범위하게 쓰이는 용어입니다. 그렇게 보면 ‘서비스 정신’은 기독교 정신이며, 모든 삶에 적용되는 가치관입니다.

히브리어 ‘avodah’는 영어 성경으로 ‘일’과 ‘예배’로 쓰입니다. ‘일’에 대한 좋은 영어 번역은 ‘서비스’(service)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예배로서 일을 받으십니다. 다시 말하면 두 단어를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의 ‘일’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자신을 위하여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제물이라는 말이며, 일하는 터전이 하나님의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교회와 가정에서 예배하고 이야기 하듯이, 직장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듯이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직장과 일에서 원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며 붙잡고, 예배자세로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태초부터 예배와 일은 하나였습니다. 일과 예배, 이 두 행위가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일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면, 예배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두 행위가 조화를 이루어야합니다.

우리의 하는 모든 일이 믿음에서 나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해진다면, 성속을 구분하고, 일의 귀천을 구분하고, 무엇보다 일과 예배를 분리하려는 이원론적 태도는 불신앙일 수 있습니다. 피조세계 즉,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는 내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속한 것이다'라고 외치시기 때문입니다.

영어의 ‘서비스’(service)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번역되지만, 사람들에게 행하는 ‘봉사와 섬김’으로도 번역됩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온전한 예배는 이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에 와서는 그 누구보다 거룩하고 은혜롭게 예배드리는 사람이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그 어느 것 하나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자가 아닙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세상에서 착한 일,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정말 열심히 봉사하지만,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자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하고, 어떤 모습으로 항상 예배하듯이 살아야하는 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48)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16)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예배’(service)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봉사’(service)이며, ‘봉사’(service)는 세상 속에서 몸으로 드리는 최고의 ‘예배’(service)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최상의 봉사로 예배하고, 세상 속에서 최고의 예배로 이웃을 섬기며 나눌 때, 세상 사람은 그런 우리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나관호 목사 (<뉴스제이> 발행인 /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세계선교연대’ 경기북부 노회장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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