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칼럼] ‘하나됨’과 ‘나누어짐’ 사이에서
[십자가칼럼] ‘하나됨’과 ‘나누어짐’ 사이에서
  • 나관호
  • 승인 2018.11.22 2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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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목사의 행복발전소 30]

‘하나됨’과 ‘나누어짐’ 사이에서 어떤 것이 정답은 둘 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물음 자체가 잘못된 것
바울과 바나바의 ‘갈라짐’은 마가와 실라의 ‘세워짐’의 원인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사도행전 8:4)

‘하나됨’과 ‘나누어짐’ 사이에서 어떤 것이 정답일까요? 그것은 둘 다 정답입니다. 상황과 환경, 조건과 여건에 맞춰 답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수학에서는 정답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답이 여러 개인 경우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런 질문을 엄마와 아빠도 합니다. 아주 어린아이들은 생각하고 고민하고 답하지 않습니다. 뇌구조의 특성상 나중에 들은 단어를 먼저 기억해 냅니다. 그래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으면 ‘아빠’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순서를 바꿔서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물으면 ’엄마‘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생각하게 되고, 이치를 알게 되면 ‘엄마와 아빠’라고 답합니다. 둘 다 좋다는 것이고 그것이 정답이니까요. 이처럼 인생은 답이 둘이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은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재작년 여름 딸 아이를 데리고 내가 재직했던 대학교 총장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딸아이가 인사드리러 간 것입니다. 비서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팀장이 딸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예린 학생! 뭐 좋아해요? 뭐 줄까요? 물도 있고, 음료도 있는데.”
“둘 다 좋아해요.”

 똑똑하고 재치 있는 예린이의 명답에 비서팀장은 잠시 머뭇하더니 웃음으로 답했습니다. 예린이처럼 그렇게 답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것입니다. 물도 좋아하고 음료도 좋아하고, 둘 다 먹고 싶은 예린이의 정답에 아빠인 나또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예린이를 통해 인생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결국 물과 음료 두 가지를 모두 먹게 되었습니다.

하나됨과 나누어짐은 동전의 앞뒤 같은 것
하나됨과 나누어짐은 동전의 앞뒤 같은 것

‘하나됨’과 ‘나누어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속에서도 두 가지 모두를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간이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 앞에 닿으려고 높이높이 올라갈 때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어 나누어지고 흩어지게 만드셨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세기 1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창세기 11:6-8)
 
하나되어 하나님께 비기고,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려는 목적의 바벨탑 쌓기를 중단시키시려고 나누고, 흩으시는 방법을 택하신 것입니다.
 
초대교회 선교와 목회의 거장이었던 바울과 바나바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세계 선교를 위해 동역자인 바울과 바나바를 나누십니다. 마가를 데리고 선교여행을 가느냐? 마느냐?로 인한 다툼으로 갈라서게 됩니다. 결국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가서 교회를 든든히 세웠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더 크게 선교지경이 넓혀지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습니다.
 
한편으로, 바울과 바나바의 ‘갈라짐’은 마가와 실라의 ‘세워짐’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도 ‘갈라짐’, ‘나누어짐’을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인위적인 분열’과 ‘거룩한 나누어짐’은 다릅니다.
 
또한, 사도행전 8장에 보면 교회에 닥친 박해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이 흩어지게 됩니다. 그 가운데 빌립도 예루살렘을 떠나 사마리아 성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사도행전 8:4-6)
 
당시 유대교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차별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는 고사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조차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하여 빌립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의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마침내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이방인들이 흩어짐을 통해 인도받은 빌립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교회 최대 교단인 장로교는 현재 240여개의 크고 작은 교단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교인수는 예장통합과 합동, 고신, 한국기독교장로회 등 장로교 주요 4개 교단만의 교인 수가 627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런데 모든 240여개 장로교단이 하나로 통합된다면 한국교회 거대교단이며, 한국교인 4분의 3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초대교회처럼 교단의 ‘나눠짐’으로 한국교회 지경이 넓혀지고, 새로운 리더십도 세워지는 긍정성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장로교단이 하나였다면 힘의 논리가 작용했을지도 모릅니다. ‘기독교 대통령’ 같은 논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갈라진 현 상황에서도 크고 작은 모든 교단에서 총회장이 되려는 욕구들이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속성상 최고 리더가 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전체가 통합 된다면, 자리가 하나인 총회장이 되기 위해 무리수가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욕구를 ‘갈라짐’의 논리로 새로운 리더십 자리, 많은 총회장 자리를 만들도록 허락하셨을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이 또한 내 말도 맞고,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도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답해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됨’만이 하나님의 뜻이고, ‘나누어짐’은 아니라는 ‘흑백 논리’로 인생과 신앙의 삶을 살아서는 않됩니다. 선과 악의 문제, 구원의 문제만이 정답은 하나입니다.
 
성경은 ‘하나됨의 은혜’와 ‘흩어짐과 찢어짐의 역사’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1-3)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창세기 11:8)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마가복음 15:37-38)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사도행전 8:4)
 

나관호 목사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세계선교연대’ 경기북부 노회장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뉴스제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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