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인간 근본이 중요한 이유 ... “근본을 변화시키는 것은 성령님 안에서 겸손”
[나관호목사 칼럼] 인간 근본이 중요한 이유 ... “근본을 변화시키는 것은 성령님 안에서 겸손”
  • 나관호 목사
  • 승인 2021.12.25 0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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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 목사의 행복발전소 160]

성경 켈리그라피를 써보니 만족스러웠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

【뉴스제이】 나의 취미 생활은 켈리그라피를 쓰는 것입니다. 특히, 성경을 닮아 지혜가 보태진 켈리그라피 구성을 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인들에게 선물하며 누리는 행복 또한 은혜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주는 자가 복되도다’라는 말씀의 실현입니다.  성경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라고 선포합니다. 

내가 쓴 '야베스의 기도문'     ©뉴스제이

그래서 나는 켈리그라피 용도의 여러 가지 크기의 붓과 도구들이 있습니다. 특히 말의 털로  만들어진 좋은 붓은 보물입니다. 그런데 요몇일 전, 외부 행사에 다녀와 보니 우리집에 있는 집사 강아지, ‘조이’가 붓을 물어뜯어 망가트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워낙 좋은 말총머리털 붓이라서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손재주를 발위해서 두 개의 작은 붓으로 나만의 수제품 붓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그런대로 켈리그라피의 특이한 글씨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그 붓으로 켈리그라피를 써보려고 연습을 하는데, 아무래도 어색하게 붓털이 정리되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신중히 털을 다듬고 다듬어 그런대로 글씨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다시 성경 켈리그라피를 써보니 만족스러웠습니다. 그 순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개입하신 생각입니다.

망가진 붓을 나만의 수제품으로 어색하게 만들었지만, 좋은 도구로 재탄생 된 것은 원래 그 말총머리털이 좋아서였습니다. ‘근본’이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솜씨가 조금 못해도 두 개로 나누어진 그 말총머리털 붓은 워낙 좋은 털이라서 켈리그라피 도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구원 받은 우리들에게 그것을 적용시켜진 생각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으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이 변해 천사가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과 함께 답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기질의 근본은 남아 있어 그 사람의 성격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베드로는 성격이 급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예수님을 붙잡으려던 말고의 귀를 자를 때, 물 위를 제일 먼저 걷겠다고 자원할 때, 모닥불 앞에서 예수님을 제일 먼저 배신 할 때, 예수님의 질문에 제일 먼저 ‘저요! 저요!’하며 답할 때, 배에서 먼저 뛰어 내릴 때,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히겠다고 아이디어(?)를 내고 제일 먼저 순교자가 될 때 등등 여러 모습을 보면 베드로의 성격은 급하고, 불같고, 행동을 먼저 하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다고 해서 모두 천사처럼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붓을 통해 ‘근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몇 년 전, 겪은 일이 기억났습니다. 자신의 굴곡진 인생을 담은 자서전 같은 책을 낸 어느 목사가 어느 기독 신문에 자신의 책 속 이야기를 몇회 걸쳐 연재하기로 했다며 나에게 원고 요약을 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나는 그 목사가 직접 쓴 책이 아니라 작가가 써준 책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 대필 작가에게 요약부탁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돈도 많이 줘야 하고 그래서....” 
  “그래도 글을 쓴 작가가 중요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으니 더 잘 할 것입니다. 거기에 부탁하세요?”
  “나 목사님이 좀 해주셔. 외국 가야하는 데 당장 원고 보내야 해요. 일단 3회분 먼저 해서 한달 한달 보내줘요” 

간곡히 부탁하기에 부족한 시간을 쪼개서 먼저 그 부탁을 들어줬습니다. 다른 글을 중단하고 그 원고 요약 위해 책을 보고 며칠 사이에 당장 3회분을 만들어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나는 원고를 보냈으니 반가운 마음에 밝은 에너지로 “여보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의 거친 말이 들려왔습니다. 
    “아휴! 나 목사는 말을 못 알아 듣네! 한달 씩 보내달라는데 세달치를 보내면 어떻게 해요?”
    “예!?!? 목사님이 신문사에 한달 한달 보내면 되지요? 신문사에서는 세달치 먼저 주면 더 좋아할 텐데....”    
    “말을 못 알아 듣네! 한달 씩 보내달라는데....”

그러더니 전화를 끊어버렸고,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연락두절이고 나 또한 통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 순간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 양OO네. 양OO럼 살았다더니 변한 것이 아니구나” 그 목사는 원고 요약 목적을 이뤘고, 작가에게 줄 원고 요약 대행비용 안들어서 좋고... 일석이조의 효과를 그 못된 기질로 인해 그 목사는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좋은 관계는 떠나버렸습니다. 그렇게 행동해 놓고서 주위 사람들에게는 나를 험담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글로 처음 나타냅니다.

평소 그 목사는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티를 내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예의가 있거나 고급스런 태도가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기질은 크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얼마 전에도 스치듯 만난 여러 목사들과 교회 부교역자를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해봅니다. 처음 보는 사이이면 더 예의가 있어야 하는데, 안면 있는 사이면 인사를 해야하는데, 무례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외모를 사람을 전부 판단할 수는 없지만, 처음 순간 나타나는 얼굴빛과 행동, 건들거리는 태도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 보면 가치 있는 고급스런 사람인지, 무식을 감추고 사는 무례한 사람인지 어느 정도 분별이 됩니다. 목사와 신부, 승려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태도는 ‘근본’이 잘못된 것입니다. 예의 없는 것, 건들거림과 거친 말투도 ‘근본’이 잘못된 것입니다. 품행이 천박한 것도 ‘근본’이 잘못된 것입니다.
  
근본이 잘못되는 뿌리는 ‘교만’에서 나옵니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언 16:18)라고 하십니다.

교만은 인간사의 모든 ‘부정적인 근본’의 시작이며 뿌리이고, 과정과 결과입니다. 그래서 근본을 변화시키는 것은 ‘교만’의 반대, 성령님 안에서의 ‘겸손’입니다. 인격이 바른 믿음 안에서 ‘겸손’으로 재탄생되는 것만이 근본을 어느 정도(?) 바꾸는 도구가 됩니다.

 

나관호 목사 (뉴스제이 발행인 및 대표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칼럼니스트 / 치매가족 멘토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제자선교회 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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