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예배] “믿음으로 의인처럼 삽시다” (롬1장) 
[읽는예배] “믿음으로 의인처럼 삽시다” (롬1장) 
  • 윤사무엘 목사
  • 승인 2021.11.1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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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다음 설교문과 예배자료는 2021년 11월 14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스물 다섯번째 주일) 겟세마네교회(인천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11월은 '믿음의 달'로 지키며, 다음 예배 자료를 나눕니다. 샬롬샬롬!!!

그리스도의 복음(46): “믿음으로 의인처럼 삽시다” (롬1장) 
                          Let us be justified by faith.

본문: 로마서 1:1~32
요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주제: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회복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의인이 되자
교독문: 24번(시 46편), 예배의 부름: 합 2:4
찬송: 589장(통 308장), 587장(통 306장), 542장(통 340장)

일자: 2021년 11월 14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스물 다섯번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교회)

윤사무엘 목사
윤사무엘 목사

오늘부터 로마서를 강해합니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서 기록한 편지로서(롬 15:19, 23-26; 16:1; 행 19:21) 바울의 서신들 중에서 구원의 복음을 가장 논리정연하게 증거하는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바울의 선교목표는 서쪽의 땅끝인 스페인(서버나)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소아시아, 유럽지역 동쪽 선교를 하고 있던 그에게 이제 유럽의 서쪽 선교를 가려고 기도하는 중 스페인 선교에 로마의 교회가 후원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복음을 조직적으로 강해하는 서신을 쓰고 있습니다. 그는 로마교회를 방문하려는 소원을 갖고 있었고(1:10), 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을 견고케 하고 열매를 맺게 하기를 원하였습니다(1:11, 13). 그는 본 서신을 기록할 당시 예루살렘의 어려운 성도들을 위해 모은 헌금을 가지고 그리로 가고 있었습니다(15:25-27). 또 그가 ‘식주인 가이오’를 언급한 것을 보면, 그는 분명히 고린도에 머물고 있었습니다(고전 1:14). 기록 시기는 주후(AD) 56년경일 것입니다.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는 구원의 이치에 대하여 증거하였는데, 1, 2장은 구원의 필요성(죄와 심판)에 대해, 3-5장은 의롭다 하심(칭의, 稱義)에 대해, 6-8장은 거룩하여짐(성화, 聖化)에 대해, 그리고 9-11장은 예정에 대해 증거합니다. 12장부터 16장까지는 구원받은 자의 삶 즉 거룩한 사랑의 삶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1. 문안 인사(롬 1:1-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는데 (2) (이 복음은 그분께서 자신의 대언자들을 통하여 거룩한 성경 기록들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3)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에 관한 것이라. 그분께서는 육체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고 (4)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 (5)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믿음에 순종하게 하려고 우리가 은혜와 사도직을 받았나니 (6) 너희도 그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7) 바울은 로마에서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절.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둘로스 doulos)라고 부릅니다. 종의 다른 번역은 노예입니다. 자신은 없고 오직 주인의 뜻대로 살아가는 종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주 임무는 사도로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함을 받았다고 분명한 자기 정체성(identity)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위해 살고 복음을 위해 죽는 사도인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해설하고 선포하는 일을 맡은 자들입니다(엡 2:20). 
2-3절.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으로서 구약성경에 미리 약속되어 있었습니다(창 3:15, 요 5:39; 눅 24:27, 44). 복음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는 참 사람이시요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참된 인성(人性 vere homo)과 참된 신성(神性 vere Deus)을 소유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참 사람으로 탄생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의 예언들의 성취입니다(렘 23:5,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라.” 겔 34: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호 3:5,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할 것이라.”) 

4절. ‘거룩함의 영’(프뉴마 하기오쉬네스 pneuma agiosyves)이라는 말은 그분 속에 계신 거룩한 신성의 영을 말합니다. 예수님 인성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요 신성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의 신성의 분명한 증거는 그분의 부활하심입니다. 부활하심으로써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있게 밝히 선언되셨습니다(호리조 horizo).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부활하심으로써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실히 인정되고 확정되고 선언되신 것입니다.

5-6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는 사도의 직분에도 관계됩니다. 우리는 직분에 있어서도 무자격한 자들입니다. 사도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믿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믿음 자체가 순종 곧 마음의 순종입니다(롬 6:17). 마음으로 순종한 자는 물론 행위로도 순종할 것입니다. 
7절.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문안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은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은혜(charis)와 평강(eirene)’ 속에 모든 복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은혜는 신약적인 인사며, 평강은 구약적인 인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의 구원도 불가능했고, 또 우리의 성화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오늘도 거룩한 길을 힘쓰며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평강(살롬)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마음의 평안과 몸의 건강과 물질적 여유와 환경적 평안을 포함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된 삶입니다. 

2. 복음을 로마에 전하기를 소원함(롬 1:8-17)

(8) 먼저 너희 모두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의 믿음이 온 세상에 두루 전하여졌기 때문이라. (9) 내가 그분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내 증인이 되시거니와 내가 기도할 때에 언제나 너희에 관하여 끊임없이 말하며 (10) 어찌하든지 이제라도 마침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탄한 여정을 얻어 너희에게 나아가게 되기를 간구하노라. (11) 내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은 내가 너희에게 어떤 영적 선물을 나누어 주어 너희를 굳게 세우고자 함이니 (12) 이것은 곧 너희와 나 사이의 공통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와 함께 위로를 받고자 함이라. (13)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이것을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도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처럼 어떤 열매를 얻기 위해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이제껏 막혔도다.) (14) 나는 그리스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지혜 없는 자에게 다 빚진 자니라. (15)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분량대로 나는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 복음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 (16)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8-10절. 그는 로마의 교인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널리 알려졌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라는 말은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음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우리의 감사의 이유도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적, 물질적 형통과 번창보다 먼저 우리 자신과 주위의 형제들의 믿음과 믿음의 성장과 믿음의 소문이 퍼져나감을 감사해야 합니다. 복음은 ‘그의 아들의 복음’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그 복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9절에 ‘내 영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표현하는데 영은 인격의 주체입니다. 우리의 인격은 우리의 혼에 자리잡고 있고, 몸은 영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중생한 영의 새 성향이 우리의 마음을 항상 주장해야 합니다. 그는 로마 교인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들에게로 갈 좋은 길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것 혹은 저것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약 4:15). 

11-13절. 바울이 로마 교인들을 보기를 원했던 목적은 그들에게 자신이 받은 영적 선물을 공유(share)하여 그들을 굳게 세우고자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적 선물’은 예언, 방언 같은 은사들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진리의 교훈을 말합니다. 사도들의 사역은 말씀 사역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성도의 신앙과 소망은 어린아이의 시기를 벗어나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로 성장하며 세우게 됩니다(골 1:28-29). 로마의 교인들과 바울 사이의 공통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가 그들과 함께 위로를 원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의 겸손한 태도를 보입니다. 사도는 성도들에게 무엇을 주려고만 하지 않고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으려 한다고 겸손히 말합니다. 성도의 교제란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은혜로 주신, 서로 안에 있는 믿음을 인해 피차 위로와 힘을 얻는 것입니다(살전 5:14). 이것이 영적 교제이며 교제의 유익이다. 13절. 그는 로마로 가기를 원한 또 하나의 목적을 그들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가 의미한 열매는 분명히 로마 성도들의 인격의 변화와 선행을 포함합니다. 우리에게는 인격의 변화와 선행의 열매가 필요합니다(갈 5:22-23). 또 문맥에 비추어 볼 때에, 그것은 전도와 사람 구원의 열매를 포함합니다. 그는 거창하게 많은 사람의 구원을 목표로 삼지 않고 ‘약간의’ 열매 즉 몇 사람의 구원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구원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14-15절. 바울은 자신이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 즉 모든 사람에게 빚을 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의 ‘빚’은 전도의 빚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깨달았다면, 또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배운 자에게나 배우지 못한 자에게나, 부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나, 우리나라 사람에게나 다른 나라 사람에게나 차별 없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16-17절.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이 로마서의 요절입니다. 그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원문은 권능이라는 말을 문장 맨 앞에 두어 강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이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 오늘도 죄인을 구원하는 것은 이 복음입니다. 복음이 구원의 능력이 되는 까닭은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義)가 복음에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의는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과 법을 다 행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바이었고(신 6:25), 죄는 하나님의 명령과 법을 다 행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 세상의 근본적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범죄함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의 해결은 사람과 세상의 근본적 문제의 해결입니다. 즉 사람의 근본적 문제는 의의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사람의 가장 근본적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과 법을 행함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너무나 명백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의를 복음에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의 모든 죄의 책임과 형벌을 담당하심으로 이루신 의입니다(롬 10:4).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이 의(義)를 주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이며,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에’라는 초보적 믿음으로 출발해서 완성된 믿음으로 자라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을 깨닫고 그분을 믿는 것이 속죄 신앙이요, 구원받는 신앙인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은 과정적인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살아가며, 믿음에까지 나아가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의인이 고난을 받는 것에 항의하는 하박국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보라, 위로 높여진 자의 혼은 그 사람 속에서 곧 바르지 아니하나 오직 의인은 자기 믿음으로 살리라.”(합 2:4)인데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가 신약성경의 기초가 됩니다(갈 3:11, 빌 3:9, 히 10:38, 11:7).

예수님의 수난
예수님의 수난

3. 우상숭배와 정욕의 죄(롬 1:18-27)

(18) 이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안에서 진리를 붙잡아 두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아니한 것과 불의를 대적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었기 때문이다.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창세로부터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21)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오히려 자기들의 상상 속에서 허망해지고 또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그들은 스스로 지혜 있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 (23)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을 통해 부정함에 내주사 그들이 자기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보다 창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느니라. 그분은 영원히 찬송 받으실 분이시로다. 아멘. (26) 이러한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런 애정에 내주셨으니 이는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도 본래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 (27) 남자들도 이와 같이 본래대로 여자 쓰는 것을 버리고 서로를 향해 욕정이 불 일 듯 하여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보기 흉한 짓을 행함으로 자기 잘못에 합당한 보응을 자기 속에 받았느니라.

18-19절. 로마서 1-2장은 구원에 필요성에 대해 증거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필요한 까닭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와 구원이 필요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죄 때문에 필요합니다. 바울은 죄인을 ‘불의 안에서 진리를 붙잡아 두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죄인은 불의 가운데 살면서 진리를 가로막습니다. 사람들에게 진실이 있다면 죄는 죄로 드러나고 죄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지만, 죄를 감추는 곳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의 죄를 불경건과 불의라고 요약합니다. 불경건은 하나님을 향해 범하는 죄의 통칭이요, 불의는 모든 죄의 통칭입니다. 물론 불의는 불경건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의(義)요, 그것을 어기거나 지키지 못한 것이 불의 곧 죄입니다. 죄들 가운데 불경건의 죄가 있고 이 죄가 근원적 죄입니다. 다른 모든 죄는 불경건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어느 정도 모든 사람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어느 정도 알려주셨는데 이것을 일반 계시라고 부릅니다.

20-23절. 거대한 천지만물의 시작과 현재까지의 보존을 묵상할 때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영원하심을, 즉 그분의 신성을 깨닫게 됩니다. 자연만물은 하나님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자연 세계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신성(神性)의 증거가 확실하므로, 사람은 하나님께서 계신 줄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21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께로부터 내리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거나 감사치 않고 도리어 우상숭배에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되’라는 말씀은 사실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입니다. 종교가 없는 민족은 없습니다. 무신론자도 전쟁 중에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었으나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고 비록 잘못된 방식으로지만 그 신을 섬겨왔습니다. 하느님을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자연만물 가운데 사는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의식하며 살지만, 그 하나님을 참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고 또 그분에게 감사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미련하고 어리석고 심히 어두워져 있습니다. 천지만물의 기원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지지 못한 것이 인생의 가장 근본적 무지(無知)요 어리석음입니다. 23절에 인생의 어리석음의 한 확실한 증거는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 세계를 혼동함입니다. 하나님은 무궁하시며 자존자시요 그분의 영광은 썩어지거나 없어지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영원히 영광스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 것들은 다 썩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영원한 영광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우상숭배에 빠져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불경건과 무지와 어리석음의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불경건에 대하여 진노하시며 그분의 진노는 정당성을 가집니다. 

24-25절. ‘그러므로’라는 말은 불경건이 모든 정욕의 죄의 원인임을 보입니다. 도덕 갱신은 하나님을 두려워함 곧 참 신앙의 부흥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악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부패하면, 그 사회의 미래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런 사회는 부도덕한 사회가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죄인들을 회개시키시고 구원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왜 당신이 그들을 구원치 않느냐고 항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래 스스로 하나님을 떠났던 자들이요, 지금도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있고 자연만물 속에 명백히 나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치 않고 오히려 우상숭배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인격의 좌소(座所)인데, 하나님은 사람의 불경건한 마음을 더러움에 버려두셨습니다. 정욕의 죄는 불경건의 죄에서 나옵니다. 정욕의 죄는 인간의 불경건의 죄 때문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추가적 징벌입니다. 죄는 죄를 더합니다. 불경건의 죄는 음란의 죄를 낳습니다.

불경건한 사회는 음란한 사회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벌입니다. 25절에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면 우상숭배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님에 관한 바른 생각을 가리키고, ‘거짓 것’은 하나님에 관한 잘못된 생각들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참 하나님을 우상으로 대치했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생각을 우상의 생각들로 대치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조물을 조물주 대신 혹은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상 앞에 절합니다. 그러나 우상이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자 앞에 절합니다.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모릅니다. 이런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자들도 하나님 대신에 돈을 사랑하며, 하나님 대신에 자기 자신을 사랑합니다. 인간은 이런 헛된 것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영원히 찬송을 받으실 분은 오직 창조자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분은 살아계시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바로 깨닫고 마음과 힘을 다해 그에게 찬송과 영광을 돌립시다!

26-27절. 동성연애를 말합니다. 정욕의 죄는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입니다. 먼저 여자들의 죄에 대해 말합니다. 여자들은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는 여인들(lesbian)이 있습니다. 여자들이 순리대로 쓴다는 말은 여자들이 성년이 되어 결혼하여 정상적 결혼생활을 하는 것을 말하며, 역리로 쓴다는 것은 정상적 결혼생활을 이탈하거나 거슬러 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여자들의 매춘 행위나 동성애 등을 말합니다. 남자들도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저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부부관계로 만족하지 않고 심지어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다. 이것은 남자 동성애(gay)를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혼의 질서를 파괴하는 악한 일입니다. 동성애의 죄악은 옛날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의 죄악이었습니다(창 19장). 또 옛날 가나안 족속들에게 이런 동성애의 죄악이 있었습니다(레 18:22). 또 고대 헬라와 로마 사람들 가운데도 이런 죄악이 보편적이었다고 합니다. 유명한 시세로(Cicero)는, “[동성애의] 행위는 헬라인들 가운데는 보편적이었고, 그들의 시인들과 위인들 및 심지어 그들의 지식 있는 자들과 철학자들도 그런 일을 행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자랑했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도시들만의 풍습이 아니라 그리스 전체의 풍습이었다”라고 합니다. 로마가 멸망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동성애 였다고 합니다. 폼페이의 벽화나 로마 황실의 벽화에 보면 성생활 문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악한 일에 대하여 ‘상당한 보응’을 내리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은 유황불비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의 산당(high places)이 동성애 장소가 되어 바알종교의 타락을 보여줍니다. 고대 헬라와 로마도 다 멸망하였습니다. 오늘날 에이즈(AIDS) 전염병, 사르스(sars), 코로나(corona)등은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거룩함의 회복만이 살 길입니다. 

4. 여러 가지 죄들(롬 1:28-32)

(28) 또한 그들이 자기 지식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림받은 생각에 내주사 합당하지 못한 일들을 행하게 하셨으니 (29) 그들은 곧 모든 불의와 음행과 사악함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하며 시기와 살인과 논쟁과 속임수와 적개심으로 가득하고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뒤에서 헐뜯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업신여기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한 일들을 꾸미는 자요,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자요, (31) 지각이 없는 자요, 언약을 어기는 자요, 본성의 애정이 없는 자요, 화해하기 어려운 자요, 긍휼이 없는 자라. (32) 그들이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도 같은 일들을 행할 뿐 아니라 그런 일들 행하는 자들을 기뻐하느니라.
28절. 죄인들은 세상의 많은 지식은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가지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이 모든 지식의 근본임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은 그 지식을 거절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버림받은 생각대로 내버려두셨다. ‘버림받은 생각’이라는 원어(아도키모스 누스 adokimos nous)는 ‘실패한, 무가치한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죄인의 생각은 하나님의 표준에 미달하고 무가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려두셔서 그들로 합당치 못한 일들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거절하는 자들은 결국 여러 가지 죄악에 떨어집니다. 욕심, 교만, 불순종, 불경건, 우상숭배는 모든 죄악들의 뿌리입니다(창 4:7, 신 30:19, 롬 14:23, 약 1:15).

29-31절. 23가지의 죄악이 열거됩니다(vice list). 죄의 종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죄를 짓지 맙시다.
① 불의(不義 unrighteousness)는 죄에서 제일 처음 나옵니다. 의에서 벗에나는 것, 옳은 길(正道)에서 벗어나 탈선하는 것은 죄입니다. 의(義)는 하나님의 명령과 뜻에 일치하는 생각과 행위요, 불의는 그의 명령과 뜻에 어긋나는 생각과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온갖 종류의 불의를 정죄하시고 우리에게 의로운 삶을 원하십니다.
② 음행(fornification)입니다. 개역, 개역개정, 현대역 성경에는 이를 삭제하고 있으나 전통사본에는 나옵니다.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음행이 가득합니다. 음행은 인간 관계의 죄들 중에 심각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종류의 음행과 불결을 미워하시고 우리에게 거룩하고 단정한 삶을 원하십니다.
③ 사악함(wickedness) 혹은 ‘추악’(포네리아 poneria)는 악한 생각, 행동, 습관입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살전 5:22).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④ 탐욕(covetousness)은 돈과 명예와 정욕에 대한 탐심을 말합니다. 탐욕은 이 세상의 것을 더 많이 원하는 마음입니다. 제 10계명에서 탐심을 금하고 있습니다. 탐심은 하나님 대신에 세상을 사모하는 마음이며 그것은 일종의 우상숭배입니다(골 3:5). 성도가 영원한 천국을 참으로 믿고 소망하고 사모한다면 지나가는 이 세상의 것에 대한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사모하는 보화와 우리의 무궁한 기업은 하나님이요 장차 올 천국입니다.
⑤ 악의(maliciousness)입니다. ‘악의’(惡意)가 가득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악한 마음에서 악한 행위들이 나옵니다. 사람은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잠 4:23). 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한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시 51:5).
⑥ 시기(full of envy)입니다. 시기심의 근원은 열등감입니다. 열등한 자가 우수한 자에게 품는 증오입니다. 시기는 교만과 함께 싹트고 미움과 더불어 자라서 남과 다투며 남을 죽이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우리는 교만과 시기를 버려야 합니다. 이를 극복하고 오히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남의 성공을 축하해 주며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⑦ 살인(murder)은 제6계명에서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을 존중하며 죽이거나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⑧ 논쟁(debate)인데 꼭 필요한 진리의 싸움이 아닌 모든 다툼과 분쟁을 버려야 합니다. 천국은 의와 진리 안에서 화평한 세계입니다.
⑨ 속임수(deceit)는 안됩니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입니다(Honesty is the best policy.) 거짓말을 한번 시작하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처음에 정직하게 말하고 일을 개선하는 것이 훨씬 이로울 때가 많습니다. Telling the truth is always the best course of action, even when being dishonest would be easier or more useful.
⑩ 적개심(malignity)은 선한 마음의 반대입니다. 분노의 다양한 표현이 적개심입니다. 결국 폭력과 폭행과 폭언을 낳게 합니다.
⑪ 수군수군하는 자(whisperers)인데 이것은 은밀히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남에게 할 말이 있으면 직접 하는 것이 사랑이며,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일에 충실하고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⑫ 뒤에서 헐뜯는 자(backbiters)는 비방하는 자입니다. ‘비방한다’는 말은 공공연히 남을 비난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방은 교만과 시기와 미움 등에서 나옵니다. 사랑은 이웃의 허물을 덮지만, 미움은 이웃에 대한 비난으로 나타납니다. 그리하여 인간관계에 금이 가고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 파괴됩니다. 사랑은 건설하는 덕이요, 미움과 비난은 파괴하는 악입니다.
⑬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haters of God)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데 하나님을 싫어하거나 회피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사람들은 왜 하나님을 미워하는가요? 빛에 속한 자는 빛을 좋아하나 어두움에 속한 자는 빛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요 3:20, 8:12). 악인은 하나님을 미워합니다. 
⑭ 업신여기는 자(despiteful)는 ‘능욕하는 자’ ‘멸시하는 자, 오만불손한 자’인데 남의 생각과 의견을 무시하는 것도 죄입니다.
⑮ 교만한 자(proud). 모든 죄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에서부터 나옵니다(창 3:5). 사탄은 루시엘이었는데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다가 루시퍼가 되어 땅에 추방당합니다(사 14:12-15).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잠 18:10-12).  피조물이 자신을 주인과 왕으로 여기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시요 왕이시므로, 교만은 어리석고 무지한 일이요 매우 근본적 죄악이다. 거기서 남을 멸시함과 자랑이 나옵니다.
⑯ 자랑하는 자(boasters)인데 업신, 교만, 자랑은 비슷한 단어입니다. 주님을 자랑해야지 자신을 자랑하는 것도 죄입니다.
⑰ 악한 일을 꾸미는 자(inventors of evil things) 죄인들은 또 악을 도모하며 계획합니다. 이것은 실수의 악이 아니고 의도된 악, 계획된 악입니다. 이것은 실수의 악보다 더 악합니다. 
⑱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자(disobedient to parents) 사람들은 또 부모를 거역합니다.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되지 않은 많은 자녀들은 부모들을 거역합니다. 이것이 부패된 인간성입니다. 아이들은 엄한 징계와 훈련을 통하지 않고는 도무지 통제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릴 때부터 징계의 매로 아이들을 교육하라고 합니다(잠 23:13-14). 사람의 부패된 인간성은 사랑의 징계를 통해 비로소 조금 제어될 수 있습니다(잠 13:24; 22:15).
⑲ 지각이 없는 자(without understanding) 즉 우매한 자도 죄입니다. 사람들은 우매하여 참 지식도 깨달음도 없습니다. 그들은 행복을 추구하면서 스스로 불행을 가져옵니다. 그들은 많은 지식을 추구하여 얻지만, 참으로 알아야 할 지식, 곧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지금 왜 여기 있으며 무엇을 위해 있는지에 대하여는 모릅니다. 이것이야말로 무지하고 우매한 인생의 모습입니다. 
⑳ 언약을 어기는 자(covenantbrakers)는 죽음으로 다스립니다. ‘배약(背約)하는 자’는 약속을 어기는 자, 불신실한 자입니다. 사람이 약속을 어기는 데는 부득이한 환경적 요인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는 자신의 불성실함과 거짓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약속하고 그 약속을 쉽게 저버립니다. 특히 사람의 불신실함은 시간에 대한 약속과 돈에 대한 약속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신실한 인격, 믿을 만한 인격은 약속을 하는 데도 신중하지만, 약속한 바는 반드시 지키려 합니다. 
(21) 본성의 애정이 없는 자(without natural affection) ‘무정한 자’는 인정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미국 대각성 운동을 시작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에게 자연적인 애정(natural affection)은 경건한 청교도 정신의 사랑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는 인정이 있어 보이지만, 환경이 조금만 악화되면 무정함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자기 유익을 위해 힘센 자는 약한 자의 것을 빼앗고 강대국은 약소국을 침입합니다. 

(22) 화해하기 어려운 자(implacable) 전통본문에 나오는 죄목입니다.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는 자요’라는 말씀입니다. 마음 상하는 일이나 원통한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마음 깊이 오래 간직하고 보복하려 합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인간관계는 허물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악을 행한 자와도, 그가 사과하면, 언제나, 즉시 화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용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23) 긍휼이 없는 자(unmerciful)도 죄입니다. 사람들은 무자비합니다. 자비와 긍휼은 하나님의 품성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사람들은 이기적(利己的)이게 변하였고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고 남의 것을 교묘히 빼앗습니다. 또 그들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결코 할 수 없을 악을 행하며 또 거칠고 폭력적이고 사악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32절. 이런 죄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율법과 공의를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양심이 증거하는 바요, 그들의 사회의 법들에 나타나 있는 바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은 사망입니다. 죄인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포함합니다(계 2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만 이런 죄악들을 행할 뿐 아니라 이런 것들을 행하는 자를 옳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더 가증한 뻔뻔함과 완악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런 모든 죄악들로부터 깨끗이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만 깨끗이 씻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오직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버리기를 결심하고 구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죄사함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방향 전환을 지금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오늘부터 로마서 강해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복음인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우리 자신이 복음대로 살게 하시며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과감히 버리고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주옵소서. 다음 주일 추수감사주일에는 속죄의 은총을 가장 크게 감사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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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1) 감사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예수님을 닮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11월15일(월) 찬 9장(통 53장), 593장(통 312) 사 57장(우상숭배 규탄)
    16일(화) 찬 9장(통 53장), 593장(통 312) 사 58장(참된 금식이란)
    17일(수) 찬 27장(통27장), 589장(통 308) 사 59장(회개 촉구)
    18일(목) 찬 27장(통27장), 589장(통 308) 사 60장(빛을 발하라)
    19일(금) 찬  8장(통 9장), 591장(통 310) 사 61장(희년 선포)
    20일(토) 찬  8장(통 9장), 591장(통 310) 사 62장(헵시바, 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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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신학교 가을학기 수업 중
◉ 2021년 11월 16일  화요일로 변경(제주도 샹그릴라 호텔), 
   찬양의 시간(9:50-10:00) - 이태환
   1,2교시(10:10~11:10) 예배학 – 윤사무엘 
   3,4교시(11:15-12:20) 성령신학 - 유석근
   점심식사(오후 12:20~1:30)
   관광(삼성혈, 이기풍순교관, 한라산)
◉장소: 제주도 (11월 15일 월 저녁 비행기로 도착, 숙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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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신학교 개교 33주년 기념 학술대회 및 동문재상봉
   일시: 2021년 11월 22일 월 오전 10시~오후 4시
   주제: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 개혁의 방향
   일정: 오전 10:00~10:20 찬양 (인도: 이태환 목사)
         오전 10:20~10:50 감사예배 (설교: 이성환 목사)
         오전 11:00~11:40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총장, 현 칼빈연구소 소장)
         오전 11:45~12:25 박호용 박사(현 대전신학대 교수)
         오후 12:30~1:00 윤사무엘 박사(현 겟세마네 신학교 총장)
         오후 1:00~2:00 만찬 및 친교
         오후 2:00~3:00 동문 재상봉(Re-union) 및 총회 
◉연락처: 010-9113-1127, 010-4907-7483. 010-7307-3589
◉장소: 수원향기로운나무 교회(이태환목사 시무), 본당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전철: 1호선 성균관대역 4번 출구, 택시로 기본 요금이면 교회 도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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