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연보에 대하여 ...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모금 헌금”
[영성칼럼] 연보에 대하여 ...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모금 헌금”
  • 윤사무엘 박사
  • 승인 2021.11.03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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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은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
‘연보’는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
‘연보’ 원어(로기아 λογία)는 ‘모금’(collection)/
윤사무엘 박사

【뉴스제이】 고린도전서 16:1-4은 ‘연보에 대하여’ 교훈합니다. ‘헌금’은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고 ‘연보’는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연보’라는 원어(로기아 λογία)는 ‘모금’(collection)이라는 말입니다. ‘성도를 위하는’이라는 말은 헌금의 목적을 말합니다. 

“이제 성도들을 위한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의 교회들에 지시한 바와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자기 곁에 모아 두어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 내가 가면 너희가 너희의 편지로 인정하는 자들이 누구든지 내가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너희의 너그러운 선물을 가지고 가게 하리라. 또한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거든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고전 16:1-4)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헌금을 부탁하였습니다(행 24:17; 고후 8, 9장). 성경에 계시된 교회의 헌금의 목적은 예배와 전도와 구제를 위한 것입니다. 헌금의 지출에서 전도와 구제를 위하는 항목이 있어야 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지시한 것같이’라는 말씀은 갈라디아 지방(한국으로 말하면 도, 미국으로 말하면 주에 해당)에 있던 교회들에게 성도들을 위한 연보(구제헌금, 선교헌금)을 뜻합니다.

‘매주일 첫날’은 주일(主日 Lord’s Day)를 말합니다. 이 날 각 사람이 이익을 얻은 대로 헌금하여 저축하라는 부탁은 초대교회가 이 날 공적인 집회로 모여 헌금했음을 말합니다. 성신님께서 주일에 강림하셔서 예루살렘 교회의 예배가 시작된 이후 토요일 안식일도 지키지만 성도들은 주일에 모여 예배와 성만찬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사도시대 직후인 소위 속사도들의 글들에 보면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에 회집하여 주일예배를 성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주후(AD) 100년경의 바나바 서신은 “그러므로 또한 우리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제8일을 기뻐하기 때문에 그날을 지킨다”고 말했고, AD 107년경 익나시우스의 마그네시아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도, “만일 옛 습관들로 살았던 자들이 새로운 소망에 이르러, 더 이상 안식일들을 지키지 않고 주님의 날을 따라 그들의 삶을 형성한다면 ... 만일 그러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를 떠나 살 수 있겠는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AD 135년에 하드리안(Hadrian) 황제의 칙령 이후 더 이상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지 않았고 주일에 공적 예배를 드렸습니다. AD 150년경 순교자 저스틴도, “일요일에 모든 도시의 사람들은 한곳에 모여 사도들의 글을 읽으라. 이 날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헌금을 취급할 때 교인들의 시험과 오해가 없게 하기 위하여 자기가 직접 관계하지 않고 그 교회가 인정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들을 보내도록 처리하였습니다. 한글개역에는 ‘인정한 사람’이 단수명사이지만, 원문에는 ‘인정한 사람들’로 복수명사입니다. 헌금관리는 두 사람 이상에 의해 바르고 깨끗하게 취급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일꾼이 마귀의 시험을 받아 거룩한 헌금을 오용, 도용한다면 그것은 범죄입니다. 헌금은 공예배의 한 중요한 순서입니다. 헌금 없는 예배는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게 했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은 신약시대에도 헌금의 모범이 됩니다. 우리의 물질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습니다. 헌금의 용도는 예배와 전도 및 구제를 위한 것으로, 전도자들과 교회의 전임봉사자들의 생활비를 위해 사용되고, 또 교회 안의 물질적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헌금을 관리하는 일은 매우 덕스럽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한두 사람에 의해 이루어짐으로 사람들의 의혹을 일으키게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재정의 투명성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교회 재정은 교회에서 모범이 될 만한 사람들을 세워서 투명성 있게 관리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바쳐진 헌금으로 범죄치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재정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사람은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맡은 종처럼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을 듣고 자녀손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재정을 정직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죄를 짓는다면 가룟유다처럼 말로가 비참하게 됩니다.

윤사무엘 박사 (겟세마네교회 담임 / 겟세마네신학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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