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익과 조덕삼의 아름다운 한국교회이야기 ... "기억자(ㄱ) 한옥교회 '금산교회'는 역사와 감동의 현장이다"
이자익과 조덕삼의 아름다운 한국교회이야기 ... "기억자(ㄱ) 한옥교회 '금산교회'는 역사와 감동의 현장이다"
  • 나관호 발행인
  • 승인 2021.09.0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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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한국교회에 바란다 《18》

교수목사의 입장에서 한국교회를 살펴보고, 진단(?)하고 나아가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찾고자 합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더 새로워지고, 세상을 향해 성경적 소리를 내고, 귀한 십자가 사랑을 바탕으로 '예수운동'(Jesus Movement)을 전하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모든 글과 생각나눔이 "한국교회 자정운동"의 씨앗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최의덕(L.B.Tate) 선교사

【뉴스제이】 추석에는 고향의 교회를 방문하는 것도 추석의 또다른 행복이다. 그중 한국교회 초기 모습을 간직한 유적으로 보존되고, 아름다운 한국교회 역사이야기를 간직한 교회가 있다.

전주와 김제 경계부근 모악산 기슭에 있는 기억자(ㄱ)로 지어진 '금산교회'(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 136호)다. 1905년 최의덕(L.B.Tate) 선교사가 설립한 '기억자'(ㄱ) 모양의 한옥교회다. 지금도 잘 보존되고 있다. 

조덕삼 장로가 이자익 목사를 담임으로 청빙
교회강대상에서 우측 마루에는 남성들, 좌측 마루에는 여성들이 앉아 예배드린 곳이다. 이 교회에 출석하던 지주 조덕삼(1867-1919, 조세형 국회의원 할아버지)과 머슴 이자익이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했는데, 이자익은 먼저 장로로 선출되고, 후에 조덕삼이 장로가 되었다. 

덕삼 장로님은 자기 머슴이지만 교회에서 선임 장로로 선출된 이자익 장로님을 존경하다가 그에게 신학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이자익은 평양신학교에 진학했고, 조덕삼은 장학금을 제공했다.

공부 마친 후 조 장로는 이자익을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초청하여 섬겼다는 미담은 한국교회의 자랑이다. 이자익 목사는 조덕삼 장로를 더욱 존경하며 의지했고, 따랐다. 그후 이자익 목사는 두 번씩 총회장을 지냈고, 대전신학대학교를 설립하셨다. 추석에 나눌 아름다운이야기다. 

남녀가 유별,  같은 공간 따로 예배
1900년대 유교사상이 짙은 시절  남녀가 유별할 때  같은 공간이지만 예배를 따로 보던 시절이 있었다. 교회 입구에서 봐도 앞쪽엔 남자가 들어가는 문이 있고 뒤쪽은 여자가 들어가는 문이 별도로 있을 정도로 결코 ‘따로 또같이’ 예배를 봤던 시절의 “ㄱ”(기억자) 모양의 한옥교회다.

1905년 미국의 최의덕(L.B.Tate) 선교사가 처음 세운 교회로 1908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왔다. 

예전에 모습의 교회가 잘 보본되어 있다. 전시관도 있어 볼거리가 풍성하다. 더 생겨난 모습입니다.

금산교회는 1905년 미국 선교사가 처음 세운 교회로 1908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왔다. 이곳은 내부 구조가 독특한 교회로써 당시 ‘남녀 칠세 부동석’에 따라서 "ㄱ"(기억자)자 모양의 구조로 남녀 구분을 지어 예배를 드렸다. 현존하는 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ㄱ자형" 한옥교회다. 오래된 종탑이 그대로 있는데, 현재도 종탑에서 예배시간을 알린다.

​남자가 들어가는 문과 여자가 들어가는 문이 달랐다. 교회 건물은 남북방향으로 5칸이며 여기에 동쪽으로 2칸을 덧붙여 뒤집힌 “ㄱ”(기억자) 형태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남자들이 들어가는 남쪽 출입문이다. 동쪽은 여자석을 분리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초기교회 건축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다
“ㄱ”자형 건물을 지어 남녀가 나뉘어 예배를 드렸다. '역 기억자' 모양으로 '왼쪽'(남쪽)은 남자가 '오른쪽'(동쪽)은 여자가 출입한후,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내부에 들어서면 통으로 이루어졌으며 강단을 중심으로 남쪽은 남자석, 동쪽은 여자석을 분리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초기교회 건축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로 우리나라 전통 사회의 남녀 구분이라는 문제를 “ㄱ”자형 건물을 지어 남녀가 나뉘어 예배를 드렸다.

'금산교회'는 지금 예배를 드리지 않고 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소박하고 아담한 모습의 내부 모습니다. ​가운데 기둥을 사이에 두고 남녀 구별을 하여 예배를 드렸다. 이런 교회는 익산 ‘두동교회’도 있지만 현존하는 “ㄱ”자형의 한옥교회 중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문화재로 보존되는 곳은 '금산교회'뿐이다.

남,녀 구분자리 양쪽 천장에 두 가지 글로 써진 상량문이 있다. 남자는 한문, 여자는 한글로 ‘상량문’에는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성경구절이 적혀 있다.

여성들이 예배를 드리는 공간은 남성 예배실 보다는 조금 작고, 아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금산교회의 특징을 하나 더 꼽으면, 남,녀 구분자리 양쪽 천장에 두 가지 글로 써진 상량문이 있다. 남자는 한문, 여자는 한글로 ‘상량문’에는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성경구절이 적혀 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린도전서 3:16-17)

동쪽은 여자석을 분리되어 여성들은 강대상 옆을 바라보며 예배를 드렸다. 
100년전 사용하던 성경책 

새롭게 만들어진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면 볼거리보다도 금산교회 옛 자료들과 닥종이 인형으로 예배드리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모습이 보인다. 오래된 종탑, 49개 건반의 오래된 풍금, 당시의 화폐 등 작은 박물관을 떠올리게 한한다.

​유교사상이 철저하던 시절 ‘금산교회’는 ‘남녀칠세부동석’ 영향으로 예배를 드리던 모습을 닥종이 인형으로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그리고 교회 초창기부터 자리했던 ‘풍금’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아직도 누르면 소리가 난다. 이 풍금에 맞추어 예배를 드렸다고 상상하니 역사의 한 페이지가 그려진다. 지금은 전시관에 보관이 되어 있는 초창기 풍금의 모습에서 역사가 읽힌다.  

교회 초창기부터 자리했던 ‘풍금’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조덕삼, 머슴 이자익을 전도해 같이 신앙생활
전라도 지역에 선교하던 최의덕 선교사(L.B.Tate)는 김제지역의 거부 조덕삼을 만나 전도한다. 조덕삼은 자기 집에서 머슴살이하던 이자익을 전도하여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 두 사람은 1905년 함께 세례를 받고 곧 이어 함께 ‘집사’가 되고, ‘영수’가 되었다.  

이자익 목사(좌)와 조덕삼 장로
이자익 목사(좌)와 조덕삼 장로

1907년 장로 선거가 있었다. 조덕삼은 김제의 최고 갑부였고, 교회를 지을 땅을 헌물 하였고, 교회 재정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동네 많은 사람이 조덕삼의 소작농이었다. 

나이도 조덕삼이 15살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자익은 경상도 마산 출신으로 외지인이었다.  조덕삼(1867~1919)은 41살이었고, 그의 집 머슴인 이자익(1882~1961)은 26살이었다. 

17살 때부터 조덕삼의 집에서 머슴살이하던 이자익은 조덕삼의 선처로 결혼도 하고, 함께 신앙생활도 하였다. 공교롭게도 둘은 장로 후보에 나서게 되었다.  

머슴 이자익이 먼저 장로가 되다
모든 사람은 조덕삼이 장로가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투표결과는 의외였다. 이자익이 장로가 된 것이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신분을 뛰어넘고, 지역 차별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모두 당황하여 술렁거리기 시작할 때 조덕삼 영수는 일어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금산교회는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고 더욱 교회를 잘 섬기겠습니다."

​그건 그냥 인사치레의 말이 아니었다. 조덕삼 장로는 죽을 때까지 이자익 장로를 지지하고 후원해주었다. 1909년 장로가 된 조덕삼은 이자익이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할 때(1910~1915)도 모든 학자금과 생활비 일체를 다 지원하였다. 

조덕삼 장로의 가정은 지금 3대째 금산교회를 섬기고 있다.  

아름다운 일화가 주는 메시지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목사를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여, 잘 받들어 섬겼다. 조덕삼 장로의 가정은 지금 3대째 금산교회를 섬기고 있다.  

​믿음과 사랑의 한국교회 역사현장 '금산교회'의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 목사와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주인과 머슴 사이였던 두 사람이 장로가 될 때, 머슴이 먼저 장로가 되었지만 주인 조덕삼 장로는 머슴 장로를 잘 섬겨주었고, 신학공부를 하도록 후원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로 참다운 신앙을 보여주었던 두 분의 일화가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교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금산교회 :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290-1번지)

 

나관호 교수목사 ( 뉴스제이 대표 및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말씀치유회복사역원 원장 /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문화평론가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제자선교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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