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십자가의 도(道) ... “성경적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영성칼럼] 십자가의 도(道) ... “성경적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 윤사무엘
  • 승인 2021.07.22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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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근본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모든 죄책과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자는 구원/
윤사무엘 박사

【뉴스제이】 교회(에클레시아 ἐκκλησία)는 예배당 건물을 가리키지 않고 성도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곧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과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벧전 2:9).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입니다. 로마서 1: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자들입니다. 

인간의 근본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죄 때문에 인간은 불행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심히 부패한 죄인들이며 어찌 할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따라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히 4:15)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와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요 1:29).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씻음 받게 되었습니다.

죄씻음과 거룩성의 회복이 구원입니다. 죄가 불행의 원인이요 하나님의 진노의 이유이었고 죄씻음은 영원한 행복과 평강의 원인입니다. 

‘성도’ 곧 거룩한 자라는 이름은 성도에게 가장 존귀한 명칭입니다. ‘거룩하여지고 are sanctified’라는 원어(헤기아스메노이스 ἡγιασμένοις)는 완료분사로 ‘거룩하여졌고’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법적으로 이미 완전하게 거룩하여졌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숨이 끊어지기 전에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테테레스타이 τετέλεσται)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9:30).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속죄사역과 완전한 의와 거룩을 다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우리의 모든 죄책과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義)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다니엘 9:24,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히브리서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are sanctified (헤기아스메노이 ἡγιασμένοι[완료시제].” 히브리서 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hath perfected(테텔레이오켄, τετελείωκεν)[완료시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구원이며, 여기에 참된 자유와 평안과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은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무너뜨리고 분별 있는 자들의 명철을 쓸모없게 만들리라 하였으니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서기관이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도다”(고전 1:18-21)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도(道)’라는 원어(로고스 ῾Ο λόγος)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의 도(道)’ 즉 ‘십자가와 부활의 말씀’입니다. 기독교 복음의 중심적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시고 다시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은 두 가지 상이한 반응을 가져옵니다. 하나는 멸망하는 자들로 그들에게는 복음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구원을 얻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복음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절망하며 구주 예수님의 대속(代贖)의 소식을 듣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 복음을 믿고 구원 얻는 자들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멸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傳道)(케뤼그마 κηρύγματος)[혹은 설교]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씁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전도 혹은 설교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이란? 전도의 내용뿐만 아니라, 또한 전도라는 방식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전도와 설교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신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며 또 말로 전하는 그 방법도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성경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하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니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24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그리스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들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들보다 강하니라”(고전 1:18-25)

기독교는 기적과 표적을 구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religion)란 인간이 만든 제도(human institution)를 말합니다. 로마 황제가 아침 조회를 할 때 지키는 법을 religio(자, 尺 rule)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복음이며 계시로 신본주의입니다. 유대인들은 기적과 표적을 구하는 종교입니다. 

오늘날 일부 기도원들을 비롯하여 많은 교회들이 신비주의적입니다. 기적주의를 표방하는 교단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풍조입니다. 기독교는 기적주의, 은사주의, 신비주의의 요소는 있으나 이것만 추구하면 안됩니다. 

또한 기독교는 또 지혜를 구하는 종교, 즉 철학적 종교도 아닙니다. 옛날 헬라인들은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하였습니다. ‘철학’(philosophy)이라는 말은 ‘지혜를 사랑함’이라는 뜻입니다. 철학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와 경험을 중시합니다. 철학은 그 성격상 인간중심적이고 인본주의적입니다. 교회에서 인문학을 강의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복음을 선포해야 하고 십자가와 부활만 강조해야 합니다. ‘철학적 신학’이 교회에 침투하면 세속화 됩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선택하시고 때가 되어 부르신 자들을 말합니다. 이것을 ‘효력 있는 부르심’(effectual calling)이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믿으라’는 초청이 아니고 ‘믿게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중생(重生) 즉 거듭남입니다. 

우리는 말세지말인 오늘날 인본주의적인 자유주의 신학이나 은사주의, 신비주의를 경계하고 성경적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적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윤사무엘 박사 (겟세마네교회 담임 / 겟세마네신학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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