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칼럼] 봉사, 돕는 것 아닌, 받들고 섬기는 것 ... "예수님도 섬기려고, 낮고 천한 말구유로 오셨다"
[봉사칼럼] 봉사, 돕는 것 아닌, 받들고 섬기는 것 ... "예수님도 섬기려고, 낮고 천한 말구유로 오셨다"
  • 정학영
  • 승인 2021.05.10 0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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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정신=봉사정신/
자원봉사, 라틴어 ‘Voluntas'에서 유래/
‘Voluntas',자발, 자주, 자유의지라는 뜻/
인격을 존중하면서 자발적 도움줘야/
정학영 장로

【뉴스제이】 저는 ‘봉사’(奉仕)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거룩한 부담감’과 ‘뜨거운 사명감’으로 십자가를 지나서 믿음의 눈으로 ‘봉사’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부인하며 ‘봉사’와 동행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봉사’라는 우리말을 한자음을 넣으면 여러가지 의미를 가진 ‘봉사’가 나옵니다. 먼저 시각장애인을 뜻하는 ‘봉사’(封事)는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요인으로 시각에 이상이 생겨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사실 ‘봉사’(奉事)는 ‘조선시대 종8품에 해당하는 관직 이름’이었습니다. ‘봉사’(奉事)는 1466년(세조 12)의 관제개정 당시 처음 등장하였으며, 시(寺)·사(司)·서(署)·원(院)·감(監)·창(倉)·고(庫)·궁(宮) 등 각 관사에 소속된 관직으로, 종7품 관직인 ‘직장’(直長)이나 정7품인 ‘참군’(參軍)으로 올라가는 전 단계의 관직입니다. 이순신 장군도 훈련원 ‘봉사’ 직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봉사’(奉事) 관직 자리에 ‘시각 장애인’들이 주로 등용되어, ‘맹인’들을 ‘봉사’라고 부르기도 했고, 그 결과 현대 사람들도 ‘봉사’를 원래 뜻보다는 ‘시각장애인들을 낮잡아 부르는 말’로 사용합니다. 

제사를 뜻하는 ‘봉사’(奉祀)는 봉제사(奉祭祀)의 줄임말로 ‘제사를 받드는 것’을 말합니다. 고려조의 ‘봉사’(奉祀) 방식이 조선의 양반가에 계승되었으나, 조선은 ‘가례’(家禮)를 받아들여 옛 제도와 융합하여 조선시대 제사풍습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헌신을 말하는 ‘봉사’(奉仕)는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고 힘을 바쳐 애쓰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에서의 ‘봉사’나, ‘자원봉사’(自願奉仕) 같은 경우에 사용됩니다. 

‘자원봉사’(自願奉仕)는 자발, 자주, 자유의지라는 뜻의 라틴어 ‘Voluntas’에서 유래하였으며, 한자로는 ‘자기 스스로[自] 원하여서[願] 받들고[奉] 섬긴다[仕]’는 뜻입니다. 즉, 자원봉사 활동은 어려운 이웃을 단순히 ‘돕는 것’이 아니라 ‘받드는 것’, ‘섬기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원봉사활동(Voluntarism)이란 개인 및 단체의 자발적 참여와 대가없이 도움이 필요한 이웃과 사회에 시간과 재능을 제공하여 사회문제 해결 및 사회공익에 기여하는 것을 말하며, 이러한 자원봉사활동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을 자원봉사자(Volunteer)라고 합니다.

자원봉사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어려운 이웃을 섬기고 돕는 행위로 ‘자원봉사’를 이해해 왔지만, 오늘날에는 돌봄과 연대의 정신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으로 확대 이해됩니다.

이렇게 확대된 의미로서의 ‘자원봉사’는 지역사회 문제나 국가의 공익사업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해 공동체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활동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아를 실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늘나라 종8품’으로 ‘믿음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는 큰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을 ‘받들고 섬기는 봉사’를 통해 기쁨과 행복을 나누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성경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4)라고 말씀하십니다. ‘영광과 기쁨 그리고 평화’는 ‘크리스마스 정신’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크리스마스 정신’이 365일, 매 순간 살아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크리스마스 정신’이야 말로 진정한 ‘받들고 섬기는 것’, 즉 ‘봉사정신’의 표본입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섬기려고, 낮고 천한 말구유로 오셨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로마 황제의 왕자로 오셨다면 그것은 모순이 됩니다. 낮은 자리에서 봉사의 모본을 보이시며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본 받는 것이 우리의 믿음 사명입니다.

정학영 장로 (영광기업 대표이사 / 영광선교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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