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칼럼] 내 인생의 ‘시일야방성대곡’ ... “예수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간질하는 사단아 물러가라!” 
[십자가칼럼] 내 인생의 ‘시일야방성대곡’ ... “예수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간질하는 사단아 물러가라!” 
  • 나관호
  • 승인 2021.04.09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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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목사의 행복발전소 150]

"이 날에 목놓아, 크게 우노라"/
사단,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게 한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뉴스제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은 황성신문의 주필인 장지연이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에 올린 ‘사설’의 제목입니다. 장지연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 논설을 써서 황제의 승인을 받지 않은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폭로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등 '을사오적 친일파'들을 규탄하며, 그 사실을 전 국민에게 알렸습니다.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뜻은? "이 날에 목놓아, 크게 우노라"라는 의미입니다. 장지연은 이 논설을 통하여 일본의 흉계를 통렬히 공박하며 ‘오늘에 이르러 목놓아 통곡하는’ 전국민의 분노를 대변해 항일의 필봉을 휘둘렀던 것입니다.

'시일야방성대곡 황성신문 논설 

그런데 해방 후,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 放聲大哭)이 다시한번 온 국민에게 알려진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영역에서 문제오류 논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답이 2개였던 것입니다. 

‘한국사 홀수형 14번 문제,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고르는 14번 문항에 옳은 설명이 2개 있었던 것입니다. 14번 문항의 유일한 정답으로 인정된 1번 ‘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하였다’ 외에 5번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논한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하였다’는 내용도 옳았던 것입니다. ‘최초로’ 게재하였다는 조건이 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시일야방성대곡’이 최초 게재된 신문은 항일언론 ‘황성신문’이었지만, 이후 ‘대한매일신보’ 지면에도 ‘시일야방성대곡’이 한글과 영문으로 실렸기 때문입니다. 

고난주간과 부할주일을 지나면서, ‘내 인생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 인생의 시일야방성대곡’이란 내 인생에서 사단의 계락과 방해, 거짓과 이간질 등으로 내 인생의 길을 막고, 흠집내기를 하며, 좋은 지인들과의 관계를 이간질한 을사오적 같은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용서했는데 아직도 살아 움직이며 바이러스처럼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알려야겠다는 결단이 섰습니다. 사단은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게 합니다. 그리고 거짓의 아비 사단이 뽑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또다시 한번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회개할 기회를 몇 번 주었는데, 회개를 못합니다. 그를 보며, 회개의 마음도 성령님의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함을 깨닫습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을 여러분에게 보입니다. 언젠가 사단이 뽑아 자기 사람을 만들어 이간질에 사용해 나와 내가 모시던 분 사이를 벌려 놓았을 때, 모시던 그분에게 결백을 표현하려고 말하려고 했던 말입니다. 내 말을 안믿어 주고, 말도 안되고 1차원도 안되는, 아니 0.001차원도 안되는 거짓말을 믿고 있기에 그랬습니다. 

“내가 그렇게 했으면, 내가 '지O' 자식이 될 것입니다. 아니면 거짓 이간질한 그 사람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으면 그런 표현을 하려고 했을까요? 여러분이 생각해 보십시오. 내 그 당시 마음을.... “이 글을 본 ‘그 당신’ 지금이라도 회개하십시오.” 

관계는 신뢰입니다. 사단은 관계를 끊어 놓는 특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사람사이를 거짓으로 이간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불신과 거짓을 심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역하게 만든 것이 사단입니다. 

사단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아니 무저갱에 갇힐 때까지 계속 거짓말을 할 것입니다. 자기를 닮을 사람을 뽑아 하나님을 불신하도록 거짓 정보를 주고, 사람들의 좋은 관계를 이간해서 끊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심판의 주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내가 패러디해 새로운 말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금명야방성대곡’(今明也放聲大哭)입니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 목놓아, 크게 우노라".      Ⓒ뉴스제이

저는 하나님을 내 스스로보다 더 사랑하지만,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나는 17세에 죽음 앞, 벼랑 끝에 서서 시한부 인생을 살아보았습니다. 죽으면 천국에 가지만, 죽음 앞자리에 막상 서면 두려움도 있게 됩니다.   

내 인생을 돌아보니 군데군데, 사단의 거짓말이 작동한 것을 보게 됩니다.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에는 별로 그런 기억이 없는데 교회 생활과 사역 가운데에서는 여러 번의 기억이 있습니다. 사단이 사람을 택해(?) 이간질과 거짓말을 동원해 몇몇의 선후배 목사들과 이간질 시켰고, 후배와 신학교 제자와의 관계를 흔들어 놓고, 때론 앞길 막았고 막으려 했습니다.

성가대를 하던 시절, 자기의 거짓을 내가 보게 되자 오히려 나를 거짓말로 옭아매려던 B는 몇 개월 후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나의 교수임용 절차와 지시가 내려졌는데 교수의 길을 막았던 그 사람. 길을 열려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인간적으로 닫았던 그 사람도 6개월 뒤에 ‘죽었다’는 부고를 전해왔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할 분입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한사람 이야기만 하려고 합니다. 20대 초반 처자였던 S. 그가 이젠 집사가 되었군요. S는 참 못된 짓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해가 안되는 것은 그의 삶의 환경을 알기에 S에게 잘해주었고, 마음 쏟아 도왔는데 너무 이간질을 많이 했습니다. 

언젠가 어느 사람이 S에 대해 표현하기를 “목사들을 가지고 놉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목사들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찾고, 목사들을 많이 자기 뜻대로 움직인다는 의미였습니다. S의 전략은 정보를 주듯이 접근하는데, 심지어 거짓을 지어서 이간질도 한다는 충격이었습니다. A에게 접근하고 싶으면, A의 가까이 있는 B의 만들어진 거짓정보를 주는데, 그것은 B가 A를 해롭게(?)한다는 거짓을 만들어 이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A는 S를 정보원(?)처럼 사용하고 주기적으로 만들어진 거짓 정보 안에서 목사들이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S는 자기가 가고 싶은 자리도, 하고 싶은 일도, 그렇게 갔고, 권위자의 일가친척이라는 거짓 루머를 퍼트려 범죄수준의 잘못에 대한 징계도 피해갈 정도로 영악합니다. 

저는 권위를 잘 인정합니다. 어린시절 아버지 교육을 통해 윗사람에 대한 존중과 나눔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아랫사람에 대한 사랑과 나눔에 대해 철저히 배웠고 그렇게 살아 왔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완벽은 없습니다. 저는 누가봐도 예의 바르고, 인사성이 밝고, 나눌 줄 알고, 희생할 줄 아는 것이 천성이고 성격입니다. 때론 너무 솔직해 오히려 피해를 보는 스타일입니다. 믿음이 생기면 마음을 잘 열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 마음열고 대화했던 사람의 배신을 최근에 알게 되면서, 깨달은 바가 많습니다. 생각해보니 난 그 사람의 속마음을 나는 하나도 몰랐습니다. 내 마음만 보였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도 내가 누군가를 모함하거나 거짓으로 이간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아니 한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S가 당신들(좋은 지인들)에게 전하기를 “나관호 목사가 당신을 어떻게(?) 했다”는 그 말은 모두 거짓입니다. 이간하는 말과 모함입니다. 지난 시간의 말도 모두 거짓입니다. 

목사님, 장로님, 선후배, 지인 여러분!  S에게서 그리고 또다른 ‘S같은 모습의 목사와 지인 이간 자’가 나타나 나에 대한 무슨 말이라도 들은 '당신(지인)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말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포함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3자 대면’해주십시오.”
“두려움 없이 S의 이간질하는 말은 모두 거짓입니다.”
“S같은 목사와 전도사 이간 자의 말도 모두 거짓입니다,”
“남에 대해 험담하고 이간하는 자를 조심하십시오.”
“언젠가를 당신 차례가 옵니다. 당신도 이간 당합니다”
“험담을 즐기는 자의 입술은 대부분 거짓입니다.”
“험담이나 이간질을 들을 때, 입장 바꿔보세요. 금방 분별이 됩니다” 
“사단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훗날 분명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유명 화가교수가 나에게 선물해준 예수님 가시관을 종이 찰흙에 반 부조 작품으로 표현한 그 작품을 가져간 부부가 생각납니다. “부부 집사여! 돌려주라! 하나님은 다 아시느니라.”  

오늘도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입니다. "이 날에 목놓아, 크게 우노라". 더 세밀히 표현하기 위해서 내가 패러디해 새로운 말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금명야 방성대곡’(今明也 放聲大哭)입니다. “오늘과 내일도 목놓아, 크게 우노라". 할렐루야!!!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대표 및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조지뮬러영성연구소 소장 / 대중문화 및 교회사 연구교수 / 치매가족 멘토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e뉴스제이두나미스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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