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예수님의 ‘제 3의 답’이 필요한 시대 ... "죄 없는 자 먼저 돌로 쳐라. 가이사의 것 가이사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
[나관호목사 칼럼] 예수님의 ‘제 3의 답’이 필요한 시대 ... "죄 없는 자 먼저 돌로 쳐라. 가이사의 것 가이사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
  • 나관호
  • 승인 2021.04.0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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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목사의 행복발전소 149]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

【뉴스제이】 예수님은 어떤 ‘생각 구조’를 가지셨을까?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면서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셨는데, 그렇다면 생각은 어떤 구조, 어떤 차원, 어떤 형태, 어떤 깊이를 가지고 사셨을지 궁금합니다. 현 시대가 예수님의 ‘제 3의 답’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 앞에서 우리들의 생각과 차원이 다른 답을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반인들의 생각 구조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제 3의 답’을 말하시곤 했습니다.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에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붙들어와, “율법대로라면 돌을 던져 쳐 죽이는 것이 마땅한데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는 함정, 고도의 낚시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고의로 간음현장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학설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상대 남자 이야기는 없기 때문입니다.

“돌로 치라”고 할 경우, 자신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라는 가르침에 역행한다고 비난받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이렇게 형을 집행하는 것은 로마 총독의 허락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로마제국 법률 위반자로 고소당할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럼, “돌로 치지 말라”고 한다면,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유죄 선고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아 살려고 노력하려면 예수님처럼 생각하는 ‘생각 구조’가 비슷해야 합니다.    ©예수님 영화 캡처<br>
예수님을 닮아 살려고 노력하려면 예수님처럼 생각하는 ‘생각 구조’가 비슷해야 합니다.    ©예수님 영화 캡처

어느 쪽을 선택하든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매우 난처해지게 되는 상황이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고소할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누가 봐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며, 둘 중 하나만 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없이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시다가 그들이 거듭 묻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는 명대사, ‘제 3의 답’을 말하셨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생각할 수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그 한 마디에 군중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전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한들 유대교에서도 모든 인간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기 때문에 교리상으로도 죄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군중들은 입을 다물고 서로의 눈치만 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글을 쓰실 때 둘러선 사람들이 하나 둘씩 현장을 도망치듯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모두 자리를 비우자 예수님은 여인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라고 묻고,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이라는 여인의 대답에 여인을 일으키며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용서의 말씀도 ‘제 3의 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슨 글을 땅에 쓰셨으며, 그런 답을 내어 놓으신 예수님의 생각구조와 형태가 궁금합니다. IQ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를 보는 눈, 문제를 푸는 방식이 다르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육적인 감각이나 지혜, IQ, 학식, 경험으로는 찾을 수 없고, 인간이 가진 사고의 틀 속에 넣어서는 찾을 수 없는 그런 답이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는 ‘제 3의 답’도 같은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차원이 다른 ‘영적 눈’으로 세상과 문제를 보셨기 때문에 가능한 답이었을 것입니다. 동물이 문제를 보고 해결 방법을 찾는 것과 다르게, 같은 문제를 보고 사람이 해결 방법을 찾는 전혀 다른 차원의 답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 살려고 노력하려면 예수님처럼 생각하는 ‘생각 구조’가 비슷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보는 세상, 사람 그리고 사건과 환경 모든 것을 예수님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볼 때 조금이라도 그분을 닮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 교회와 세상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혼란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질문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닮은 ‘생각구조’를 가지고, 예수님의 마음과 눈으로 교회와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 세상 모든 사건들을 바라보며 길을 찾는 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는 예수님의 지혜로운 답을 ‘패러디’해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도 있습니다. 2004년, 김명민 주연의 ‘불멸의 이순신’ 39화 마지막 씬에서, 예수님의 명대사를 패러디한 장면이 등장했습니다.

왜구에게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가 이웃 사람들에게 학대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를 이순신의 아내인 방씨 부인이 사정을 들은 뒤 말을 합니다.

“저 여자를 죽이려면 죽여도 좋네. 단, 맨몸으로 칼 든 왜놈 앞에서도 당당한 이, 머나먼 이국땅에 끌려가서 맘 붙일 데 없어도 아무에게도 눈 돌리지 않을 수 있는 이, 꿈에도 그리던 고향 땅으로 보내 준다고 해도 살아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틸 수 있는 이 부터 돌로 칠 수 있네.”

이처럼 삶에서, 사람을 살려야 하는 난제 앞에서 예수님의 지혜로운 답이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지혜로운 답을 묵상하고, 적용하다 보면 때로 ‘제3의 답’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제 3의 답’은 전혀 ‘새로운 생각’이며, ‘새로운 가치관’입니다.

“표적이 너무 커서 눈 감고도 맞출 수 있겠구나.”    ©국민일보 <br>
“표적이 너무 커서 눈 감고도 맞출 수 있겠구나.”    ©국민일보 

나의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다윗에 관한 성경을 묵상할 때였습니다.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오는 다윗을 향해 백성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사무엘상 18:7-9)라며 다윗의 위대함을 칭송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울왕은 그때부터 다윗을 주목하며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부분을 계속 묵상하는데 사울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새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신하요, 백성이었으며, 사위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의 위치는 다윗을 품고, 다스리고, 지시하고, 명령하고, 발아래에서 순종을 말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결론은 다윗이 만만이요, 사울이 천천이라도, 왕의 리더십 자리에서 보면 사울은 ‘만만천천’, 즉 ‘만천’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깨달은 새로운 생각, 일종의 ‘제 3의 답’이었습니다. 사울이 그렇게 깨달았다면 다윗을 죽이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17장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앞에서 칼과 단창 그리고 놋 갑옷으로 무장하고 달려드는 골리앗의 덩치 앞에서, 사울과 백성들은 두려워했지만 다윗은 다르게 생각했을 것이라는 재미있는 ‘새로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골리앗의 덩치가 굉장히 크니, 물맷돌을 던질 때 표적이 너무 커서 눈 감고도 맞출 수 있겠구나. 하하하”

재미있는 발상이었습니다. 이처럼 조금 다른 ‘새로운 생각과 가치관’은 문제를 다시 보게 하고 답을 찾아가게 합니다.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나라의 문제, 교회의 문제, 사회의 문제, 개인의 문제 속에서 ‘제3의 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더 진보된 해결이 나올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 3의 답’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한국사회와 한국교회 그리고 목사와 성도들 개인 속에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돌로 내리 치도록 '기획된 문제점'과 돌로 내리 치라는 '폭력적 답', 그리고 무조건 옹호하는 '해방의 답' 속에서 지혜로운 ‘제 3의 답’이 필요합니다.

살려 내면서도 다른 말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모든 상황을 잠잠히 만드는 답'을 찾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 예수님의 ‘제 3의 답’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예수님이 지혜를 닮아 가려면 그분처럼 생각하는 훈련이 선행되야 합니다. 그래야 모함하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거짓으로 고소할 기회를 잡았으려는 악인들도 무릎 꿇게 하는 명대사가 나옵니다.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

 

나관호 목사 (뉴스제이 대표 및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조지뮬러영성연구소 소장 / 치매가족 멘토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자문위원 / e뉴스제이두나미스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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