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승은 거둘 것으로 생각했다. ... "매일 아침 40명 선수 이름 부르며 기도 ... 한국어 교가 울릴 때 교포들 눈물"
나는 1승은 거둘 것으로 생각했다. ... "매일 아침 40명 선수 이름 부르며 기도 ... 한국어 교가 울릴 때 교포들 눈물"
  • 조선일보 이하원 특파원
  • 승인 2021.03.3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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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동포들의 자존심을 살려준 한국계 교토국제고의 고시엔(甲子園) 고교 야구 대회 첫 승에 대한 감격 이야기다. 그 속에 '믿음과 기도'의 승리 이야기가 있다. 조선일보 일본 특파원 이하원 기자가 박경수 교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駐]

매일 아침 선수 40명 이름 부르면서 기도/
심판에게 정확히 볼 수 있는 눈 주시도록/
아이들, 눈 감지 말고 배트 휘두르게 해 달라고/

【뉴스제이】 올해 93회를 맞은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에 열리는 고시엔 대회)에 출전한 한국계 교토(京都) 국제고가 24일 시바타고(미야기현)를 5대4로 꺾고 2회전에 진출했습니다. 일본에서 프로야구 인기를 능가하는 대형 행사인 고시엔 무대에 '교토국제고'는 외국계 학교로는 처음 출전해 첫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교토국제고'가 고시엔 대회에 처음 출전했던 1997년에는 첫 경기에서 0:34로 패한바 있다. 이런 시련 끝, 승리 이야기를 '뉴스제이'가 같이 기쁨을 나눕니다.  [편집자駐]

[이하원이 만난 사람] 고시엔 진출 기적 이끈 교토 국제고 박경수 교장

고시엔(甲子園) 고교 야구는 일본인 1억2500만명을 거느린 거대한 종교를 연상시킨다. 일본 열도 전체를 들썩거리게 하는 초대형 행사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해 10대 국내 뉴스 중 하나로 ‘코로나로 인한 고시엔 중단’을 꼽은 것은 이 대회의 무게감을 보여준다.

한국계 교토국제고는 2년 만에 열린 제93회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에 열리는 고시엔)에 외국계 학교로는 처음 진출한 데 이어 첫 승을 거뒀다. 재일교포가 세우고 한일 학생이 함께 공부하는 이 학교는 고시엔 구장에 처음으로 ‘동해 바다’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지게 해 깊은 감동을 줬다. 전교생 131명의 미니 학교를 고시엔에 진출시킨 박경수(62) 교장을 지난 16일부터 학교와 고시엔 구장 등에서 다섯 차례 만나 관련 얘기를 들었다.

믿음의 사람, 교토 국제고 박경수 교장      Ⓒ이하원 특파원

학교 운동장 작아 외야가 반쪽뿐

Q : 27일 열린 16강전에서 9회말 투아웃까지 이기다가 5대4로 역전패했는데.

A : “많이 아쉽다. 상대 팀을 보니 우리보다 선수가 2배는 더 많더라. 일본 고교 야구팀은 100명이 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작은 학교라서 40명에 불과하다. 우리가 고시엔에 진출해 1승을 거둔 것은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선수들이 고마울 뿐이다.”

Q :역전패도 교체할 투수가 부족했기 때문 아닌가.

A :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학교에 오는 야구 선수들이 넘버 원이라고 할 수 없다. 넘버 원은 모두 여건이 좋은 고교로 간다. 넘버 투를 받아서 여기까지 왔다. 운동장이 작아서 외야가 반쪽밖에 없는 고교 팀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Q :고교 팀 4000개 중에서 32팀만이 진출하는 고시엔 출전이 확정됐을 때 학교 안팎 반응은.

A : “난리가 났다. 학교 이사회 어르신들이 놀라 자빠지셨다. 일본 전역의 교포들로부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화를 받았다. 90대 고령의 한 교포는 굳이 학교를 찾아와서 20만엔을 기부하고 갔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정지택 총재, 국회 교육위의 유기홍 위원장이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왔다.”

Q :고시엔 진출을 예상했었나.

A : “내가 기독교인이다. 잠을 깨면 매일 아침 선수 40명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했다. 심판에게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우리 아이들은 실수 없이 눈 감지 말고 배트를 휘두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1승은 거둘 것으로 생각했다.”

Q :고시엔의 전통대로 경기 중에 한 차례, 승리 후 또다시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진 것이 한국에도 큰 화제였다.

A : “70~80대 재일교포들이 눈물을 많이 흘렸다. 한국어 교가가 NHK를 통해 방송되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것 아닌가.”

고시엔 1라운드 경기에 응원온 교토국제고 학생들이 한국어로 교가를 부르고 있다.     Ⓒ이하원 특파원

고시엔 진출로 교민 사회 하나 돼

Q :고시엔 구장 응원석에서 걸음걸이도 힘든 고령의 재일교포들을 많이 봤다.

A : “우리 아이들은 야구를 좋아하고 학교를 사랑할 뿐이다. 어른들의 정치는 모른다. 교육 이외의 다른 것으로 우리 학교에 접근하지 않았으면 한다.”

Q :교토고의 ‘동해 바다’ 가사는 NHK에 ‘동쪽의 바다’로 번역한 자막이 나갈 정도로 민감한 문제였는데

A : “여러 가지 말 못 할 사연이 많이 있다. 확실한 것은 우리는 음원(音源)만 제공했을 뿐 그런 자막을 보낸 일이 없다. 일본 미디어도 여기에 큰 관심을 가져서 내가 교가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답하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 학생들의 안전과도 관계된 문제이기에 일본 경찰에 경호 요청도 했다.”

Q :다행히 교가 문제가 커지지 않아 안도하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야구를 좋아하고 학교를 사랑할 뿐이다. 어른들의 정치는 모른다. 교육 이외의 다른 것으로 우리 학교에 접근하지 않았으면 한다.”

Q :학생들이 한국어 교가에 대한 거부감은 없나.

A : “국제 학교로 성격을 바꾼 후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 학생들에게 앙케트를 한 적도 있다. 그랬더니 학생들 대다수가 반대했다. ‘한국이 좋아서 들어왔는데 왜 한국어 교가를 바꾸느냐’고 했다. 아이들이 너무 예뻐 보였다.”

Q :일본 국적의 학생이 60%가 넘는다. 한일 학생이 서로 모여서 공부하는데 갈등은 없나.

A : “(고개를 흔들며) 우리 학교에 오면 금방 친구가 된다.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말이 잘 안 통해서 번역 프로그램을 통해서 말하다가 금방 친구가 된다. 한일의 청소년들은 무조건 자주 만나게 해야 한다.”

24일 일본 효고(兵庫)현 한신(阪神) 고시엔(甲子園) 구장에서 열린 제93회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 고시엔) 첫 시합 32강전에서 교토국제고가 10회전 연장 승부 끝에 시바타고를 5-4로 이긴 뒤 그라운드로 뛰어나가고 있다.    (사진 :마이니치신문 제공)
24일 일본 효고(兵庫)현 한신(阪神) 고시엔(甲子園) 구장에서 열린 제93회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 고시엔) 첫 시합 32강전에서 교토국제고가 10회전 연장 승부 끝에 시바타고를 5-4로 이긴 뒤 그라운드로 뛰어나가고 있다. (사진 :마이니치신문 제공)

일본 국적의 학생 60% 넘어

박 교장과 교토고의 인연은 그가 일본 유학 후, 2002년 교육부에 돌아와 국제교육협력과에 근무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1947년 교토조선중학으로 설립됐던 이 학교가 극심한 운영난을 겪자 일본 교육법에 따라 문부성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1 조’ 학교로 전환하도록 실무 작업을 했다.

Q :학교의 성격을 바꿔서 일본 학생을 받을 때 반대가 많지 않았나.

A : “학교를 일본에 팔았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죽어가는 학교를 살린 것이다.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조건을 맞추기 위해 땅을 더 사들여 테니스장을 만들기도 했다. 한국 학교만 고집했으면 벌써 문 닫았다.”

-Q :당시의 판단을 지금 어떻게 생각하나.

A : “우리가 일본 학생 받아도 한국계 학교다. 외국에 숱한 한국 학교가 있다. 그런데 왜 꼭 한국 정부만 해외의 한국 학교를 책임져야 하나. 외국 정부도 지원해서 공생(共生) 사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Q :현재 학교 재정은 어떻게 하나.

A : “1년에 한국 교육부에서 약 10억원, 일본 문부성에서 15억원가량을 지원받는다. 일본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의 출신 지역에서 장학금을 받는다.”

Q :2017년 교장 취임 때는 어떤 상황이었나.

A : “주오사카 총영사관에 영사로 활동해서 정년 퇴임하기 직전이었다. 그때 운영난을 겪던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브레이크 걸지 말라’는 조건을 달고 취임했다. 그런데 부임해 보니 학교가 엉망이었다.”

Q :학교가 얼마나 어려웠나.

A : “전체 학생 수가 7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교사들 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해 사기가 형편없었다.”

Q :무슨 일을 가장 먼저 했나.

A : “학교의 틀을 잡기 시작했다. ‘남학생은 야구, 여학생은 K팝’으로 특화해서 학교를 살리자고 생각했다. 야구부원들의 숙소를 화장실, 목욕탕부터 개선해서 모두 새롭게 바꿔줬다. 기숙사도 벽지를 바꾸고, 에어컨 세탁기를 모두 교체했다. K팝을 하고 싶다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오사카의 연예 전문가를 불러서 특별 교육을 시켰다.”

Q :어떤 변화가 생겼나.

A : “환경을 바꿔주니 학생들이 달라지고 정원 미달의 학교가 경쟁률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강성이라는 것을 학교 교사들이 알고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확 퍼졌다. 지금은 모든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Q :재정이 부족한 것은 어떻게 해결하나.

A : “교장이 할 일은 장학금 끌어오는 것이다. 학생들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하도록 장학금 끌어오는 것을 본업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웃음).”

Q :한국어 교육은 얼마나 시키나.

A :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에서 한국어 시간이 제일 많다. 내가 직접 편집한 조선통신사 책으로 교육시키고, 4~5회 한국을 방문시키고 있다. 학생들에게 한국인의 근성을 갖게 하는 것도 교육 목표다.”

Q :교토 국제고는 어떤 학생들이 오나.

A : “남학생들은 공부고 뭐고 다 싫다, 그저 야구공만 가지고 놀고 싶다는 학생이 많다. 여학생들은 대부분 매일 K팝 노래하며 댄스만 하고 싶다는 이들이다(웃음).”

지난 24일 일본 효고현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제93회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 첫 시합 32강전에서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역전한 뒤 환호하고 있다. 교토국제고는 10회 연장 승부 끝에 시바타고를 5-4로 이겼다. (사진 : 연합뉴스 / 조선일보)
지난 24일 일본 효고현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제93회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 첫 시합 32강전에서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역전한 뒤 환호하고 있다. 교토국제고는 10회 연장 승부 끝에 시바타고를 5-4로 이겼다. (사진 : 조선일보)

한국인 근성 갖게 교육

Q :‘박경수 리더십'이 앞으로의 어디를 향할 지 궁금하다.

A : “어느 정도 학교가 안정화돼서 이제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가도록 지도하는 것이 목표다. 중학교에는 골프부를 만들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건물을 더 지어서 학생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Q :고시엔에는 다시 도전하나.

A : “야구부 만들 때 ‘고시엔 가자’라고 했지만, 정말 진출할 줄은 몰랐다. 한번 개화(開花) 하면 두 번째 개화는 쉽지 않나. 이번에 고시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올해 여름 아니면, 내년에 보다 좋은 경기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Q :일본에서 한국계 학교를 운영하면서 느낀 한일 관계는.

A : “외할아버지가 일제 식민지 시절 홋카이도 탄광에서 28살 때 돌아가셨다. 그 후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겠나. 어렸을 때 어머니가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것을 많이 봐 왔다. 일본에 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더 할 말이 많지 않겠나. 그러나 이제는 양국이 함께 가야 한다. 우리나라 일부에서 자꾸 과거 역사를 들춰서는 곤란하다.”

Q :용서하고 가야 한다는 것인가.

A : “과거에 일본이 잘못한 문제는 과거대로 끝내고 앞만 바라봐야 한다. 과거•현재•미래의 한일 관계에서 이제는 미래만 생각해서 가야 한다.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는 게 내 신념이다.”

 

☞박경수는 누구

교육부 공무원 출신으로 2000년대 초반 일본 규슈(九州)대에서 연수,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으면서 일본과 인연을 맺었다. 이어서 주일대사관, 주오사카 총영사관에 파견돼 재일교포 자녀 교육을 담당했다. 2017년 교토국제고 교장으로 부임 후, ‘남학생은 야구, 여학생은 한류’로 특화시켜 학교를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육부 공무원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한 경력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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