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바울교구다”... 바울교회 원팔연 원로목사 목회철학 새롭게 대두... "목회는 '3기', ‘기’다리고 ‘기’대하고 ‘기’도하는 것”
“세계는 바울교구다”... 바울교회 원팔연 원로목사 목회철학 새롭게 대두... "목회는 '3기', ‘기’다리고 ‘기’대하고 ‘기’도하는 것”
  • 강미애
  • 승인 2021.03.2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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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보다 1년 일찌감치 퇴임/
성결교회 최초, 성도 1만 명 시대 열어/
예배 성공자=인생의 성공자 강조/
사례금을 봉투째 교회에 헌금/

【전주=뉴스제이】 강미애 목사 = 조기은퇴한 원팔연 목사(전주 바울교회)가 46년 간의 목회를 뒤로하고 2017년 은퇴한지 4년째가 되었다. 현재 한국교회에 여러 목소리와 모본이 있지만 원팔연 원로목사의 목회철학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 46년간의 목회 여정에 마침표를 찍은 원팔연 원로목사는 바울교회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대표교회로 성장시켰다. 정년보다 1년 일찌감치 젊은 후임이 교회를 맡아 변화를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준비하며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게 되었다. 원 목사는 지역사회와 지역민을 섬기고 봉사하면서 바울교회를 호남지역 최대의 교회로 키워냈고,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 최초로 성도 1만 명 시대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원팔연 원로목사는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매일 강단에서 잠을 자면서 밤을 지샜고, 결국 5년 만에 사우디와 네팔, 필리핀, 중국 등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됐다. 그후 바울교회는 100여 명의 해외선교사를 파송하고, 50개 해외교회, 17개 국내 지교회를 세웠다. 

또 ‘바울교회’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경로대학, 문화센터, 호스피스, 재가복지, 어머니학교 등 다양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또 바울선교문화센터를 설립해 지역주민들에게 항상 개방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교회의 문턱을 낮추었다. 

 ‘바울교회’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경로대학, 문화센터, 호스피스, 재가복지, 어머니학교 등 다양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전주 바울교회

원팔연 원로목사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전총회장, 전 서울신학대학교 이사장, 우간다 쿠미대학 초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필리핀 바울신학대학교 이사장, 기성 증경총회장단 회장 등을 맡은바 있다. 또한 사단법인 세계성령중앙협의회로부터 ‘제12회 홀리스피리츠맨 메달리온 목회자부문 대상’을 받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로부터 자랑스런 지도자상 중 ‘부흥사상’을 받은 바 있다. 이처럼 큰 족적을 남긴 원팔연 목사는 오로지 목회 한 길만을 걸어와 많은 열매를 맺은 목회자로 알려져 있다. 


회심 후 철저한 신앙 생활 ... “예배의 성공자는 인생의 성공자가 된다”

원팔연 목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새벽기도회를 출석하기 시작해 이후 새벽기도회와 수요기도회, 그리고 찬양예배 등을 모두 참석했고, 철저하게 주일 성수를 하는 인생을 살아왔다. 이에 대해 원 목사는 “예배의 성공자는 인생의 성공자가 된다”며 “그래서 예배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고, 예배는 하나님을 가장 감동시키는 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하나님을 감동케 하면 축복이 온다. 존 워너 메이커는 가난해서 학교도 못 간 아이였는데, 12살 때 교회당 앞 물 웅덩이에 벽돌 징검다리 놓는 봉사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니까 세계적인 백화점 왕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 그는 미국 체신부 장관 직도 수락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본 교회 주일성수가 어렵다’는 점과 ‘교회학교 교사직을 하기 힘들다’는 이유였으나 결국은 두 가지 조건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체신부 장관직을 맡게 됐다”고 강조하곤 했다.

원 목사는 예배를 소홀히 하면 인생이 실패하고. 예배 없는 봉사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을 감동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므로 예배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점을 항상, 매우 강조했다.


목회 초년병 시절 ... “오토바이 바퀴를 3개월에 한번 씩 바꿨다”

원팔연 목사는 신학생 시절 서울 ‘홍은교회’에서 교육전도사를 역임했다. 나이 24살 육군 이등병이었을 당시 경기도 여주의 ‘장풍성결교회’에서 전도사 칭호를 들으며 목회를 했던 원팔연 원로목사는 '성도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 목회'라고 생각하였다. 

지난 1981년 목사안수를 받은 후 350명 출석하는 ‘정읍교회’로 청빙 받아 담임목사로 부임했고, 4년 만에 배가 넘는 800명 성도로 부흥시켰다. 이에 대해 정읍교회 출신 장로는 “원 목사는 오토바이 바퀴를 3개월에 한번 씩 바꿀 정도로 밤중까지 심방했다. 일과 후에도 밤새 기도에 힘썼다. 그리고 내장산 고개 넘어 순창군 쌍치면까지 약 50km를 넘나들며 ‘답동교회’를 개척할 정도로 복음 전파에 대한 열정을 가졌다”고 소회했다.

원팔연 목사가 46년간 목회하면서 지켰던 소신 두 가지는 "행복한 목회를 해야 한다는 것"과 "교회는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행복한 목회를 꿈꾸고 있다면, 목회의 규모와 조건을 보지 말고 오직 사명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며 “목회는 '3기'라고 보는데, ‘기’다리고 ‘기’대하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 바울교회

전주 바울교회 개척 시작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나갈 것이다”

원팔연 목사는 “정읍을 떠나 전주로 가라”는 감동을 받고 순종했다. 원 목사는 ‘정읍교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난 1985년 2월 17일, 전주 중앙동 소재 7명의 교인들이 있었던 ‘동전주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동전주교회’는 지난 1982년 8월 29일부터 7명의 집사가 다가동 8평짜리 지하방에서 ‘전주다락방기도처’라는 현판을 내걸고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됐다. 예배 드리던 중 1983년 최병탁 전도사가 부임해 1984년 8월 10일 중앙동 2가에 건평 33평을 임대했다. 

이후 원 목사가 제2대 목사로 부임한 후 대부흥을 일으켜 서완산동으로 이전하면서 교회 명칭을 ‘바울교회’로 변경함과 동시에 새성전 입당감사예배를 드려다. ‘바울교회’로 개명하면서 “세계는 바울교구다”라며 “성령에 이끌리어 인도하는 대로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처럼 전주로 와서 교회를 개척하다시피 한지 25년 만에 2만여 평의 교회 부지를 확보했고, 1만 5천명의 교인이 등록해 호남 최대 교회를 이뤘다. 

 

하루 세 번 기도회 ...“양들을 위해 목숨 버릴 각오로 뛰었다”

원팔연 목사의 목회 비결은 하루 세 번 기도회를 하고, 그리고도 밤마다 모여 기도하며, 말씀 듣고, 날마다 전도하며, 지역주민들을 위해 봉사한 것이다. 그는 밤마다 강대상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리고 양들을 위해 목숨 버릴 각오로 뛰었다. 이 패턴에 따라 성도들은 모두 순종하며 반복적으로 참여했다. 이로 인해 오순절 성령을 체험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새로 나오는 교인들의 숫자는 늘어갔다.

 
강한 성도 교육...“십자가군병으로 만든다”

원팔연 목사는 몰려드는 새신자들에게 철저하게 교육과 훈련을 시켜 순한 양들을 강한 '십자가의 군병'으로 키웠다. 동시에 성령체험과 성령의 은혜로 만족을 누리는 교인들로 넘쳐났다. 그 결과, '십자가 군병' 같은 만 명이 넘는 교인들이 모였고, 마치 군대들을 지휘하고, 명령하는 듯이 목회했다. 그러면서 열방을 품고, 기도하고 온 세계를 향해 선교 비전을 갖게 했다.

목회 33년차에 접어들면서 등록교인만 1만5천여 명이나 되는 호남 최대 교회로 성장했다. 이 비결에 대해 원 목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매일 강단에서 잠을 자면서 밤을 지새웠고 5년 만에 사우디와 네팔, 필리핀, 중국에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선교 지향적 교회로 변화됐다”고 술회했다. 그 결과, 세계 방방곡곡에 선교사 100명 이상을 파송하게 됐다.


모든 재물은 주님의 것 ... “사례금을 봉투째 교회에 헌금했다”

원팔연 목사는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집회 초청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부흥강사로 뛰어 다녔다. 이 과정에서 1주일에 2~3개 교회의 부흥회를 맡아 인도했으나 금요철야기도회는 반드시 바울교회에서 인도했고, 밤 새워 교회당에서 기도하며 부교역자들에게 빈틈없이 교구심방과 교인 관리를 보고토록 해 섬기는 교회에 집중했다.

게다가 집회 인도 후 받은 사례금을 봉투째 교회에 헌금하거나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와 교역자, 그리고 교단의 산하 각 기관들에게 아낌없이 주곤 했다. 아름다운 증언은 교파를 초월해 수도 없이 많다.

또한 지역사회에도 봉사의 끈을 놓치지 않고 '퍼주는 교회'로 전주시내에서 소문이 났다. 한편 기성 100주년을 맞이할 당시 서울신학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건축을 하기로 결정돼 박남형 목사(전국여교역자회 증경회장)가 지원을 요청하자 원 목사는 거액을 전액 지원해 주고 수시로 전화할 정도로 관심을 가졌다.


후배 위해 조기 은퇴 결심 ... “제2의 선교여정을 살아가려고 한다”

원팔연 목사는 교단 헌법에서 규정한 만 70세 정년보다 1년이나 앞당겨 은퇴를 결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새로 부임할 목사를 위해 12년 전부터 기도하면서 준비했는데, 기도한대로 가장 적합한 인물을 후임자로 청빙했다”며 “만 70세까지 교회에 있는 것보다 새로 부임하는 목사가 마음껏 교회 변화를 주도하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후임자가 목회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열심히 도울 생각”이라며 “여생을 주님을 위해 새로운 선교비전을 갖고 제2의 선교여정을 살아가려고 한다. 오엠에스코리아 이사장으로서 힘을 내려한다”고 전했다


원 목사의 목회철학... “행복한 목회, 교회는 성장시켜야 한다”

원팔연 목사가 46년간 목회하면서 지켰던 소신 두 가지는 "행복한 목회를 해야 한다는 것"과 "교회는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행복한 목회를 꿈꾸고 있다면, 목회의 규모와 조건을 보지 말고 오직 사명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며 “목회는 '3기'라고 보는데, ‘기’다리고 ‘기’대하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불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까지 기다리고, 그들이 변화되고 성장할 것을 기대하며 끝까지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교회 대부흥의 역사 모델 원팔연 목사가 은퇴한지 4년이 지났다. 그의 열정적인 목회를 이어받을 목회자가 많이 양성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한국교회 안에 늘어가고 있다.


원팔연 원로목사 퇴임사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33년간 정들었던 바울교회의 성도들의 기도로 은퇴합니다. 눈물겹도록 감사합니다. 남은 시간 바울 사도처럼 선교하며 살겠습니다.

성도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합니다. 

첫째, 이제 여러분의 목자는 신용수 목사입니다. 바울교회의 선장은 신용수 목사입니다. 나의 자취는 여러분의 머리 속에서 지우시기 바랍니다. 이제 신용수 목사님과 함께 끝없이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신앙의 목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의 목표는 직분에 목숨거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탈락하지 말고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후임목사는 모든 성도들을 다 천국으로 인도하기를 바랍니다.

 

강미애 목사(뉴스제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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