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율법주의 ‘NO' ...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영성칼럼] 율법주의 ‘NO' ...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 윤사무엘 목사
  • 승인 2021.03.2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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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성도의 경건, 동기와 목적 다르다/
육신적 노력으로 의롭게 될 수 없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義) 안에 거해야/
윤사무일 박사

【뉴스제이】 ‘율법주의’란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행해야 의롭게 되고 완전케 된다는 주장입니다. ‘

‘율법주의’에서는 신자의 신앙생활과 선행이나 봉사의 동기나 목적이 의와 도덕적 완전에 도달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과 배치되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생활을 힘쓰고 선한 일을 힘쓰지만 그 동기와 목적이 다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마땅히 의롭고 선한 삶을 힘쓰는 것입니다(롬 12:1-2). 

바울은 ‘율법주의’의 잘못에 대해 갈라디아서 3:1-14을 통해, ‘율법을 지켜야 의롭게 된다’는 생각에 대하여 적어도 일곱 가지의 반론을 제시합니다.

① 십자가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② 성령님 : 우리는 율법을 행함으로써가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성령님께서 신자들 속에 오심은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전제합니다.

③ 육신적 노력 'NO' ; 사람은 율법을 지키려는 육신적 노력으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역사와 성경 자체가 증거하며(사 64:6; 렘 13:23; 17:9) 또 우리가 경험하는 바입니다.

④ 기적 :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에 성령님의 기적들을 베푸신 것도 신자들이 율법을 지킬 때가 아니고 단지 예수님을 믿을 때입니다(행 3:12, 16).

⑤ 믿음으로 : 아브라함은 행함으로가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창 15:6). 
⑥ 저주 아래 :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려는 자들은 저주 아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율법을 항상 지키지 않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성경이 말하기 때문입니다(신 27:26).

⑦ 성경 예언 : 성경은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합 2:4).

그래서 ‘율법주의’ 곧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려는 생각은 명백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려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의 불완전한 행위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죄인들의 유일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義) 안에 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 만족해야 하며, 그분의 의안에서 자유와 기쁨과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의안에서 날마다 기쁨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그분의 의안에서 의롭고 선한 삶을 추구하며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은 “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가운데서 너희 눈앞에 분명하게 제시되었거늘 누가 너희를 꾀어 너희가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고자 하노라. 너희가 율법의 행위로 성령님을 받았느냐, 믿음에 관하여 들음으로 받았느냐?”(갈라디아서 3:1-2)고 말씀합니다.

‘진리’는 은혜의 복음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어리석도다’라고 책망하면서 율법주의를 반론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미 앞장 끝에서 말한 바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이며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담당하신 대속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율법을 지킴으로 완전케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시작된 성도의 신앙생활은 육신의 노력으로 완전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갈 5:16에서 “너희는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소욕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율법을 지켜 온전케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어리석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갈라디아교인들 가운데 성령님의 기적들을 행하신 것이 그들이 복음을 듣고 믿을 때이었지, 율법을 행할 때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님의 초자연적 은사들과 기적들은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단지 예수님을 믿을 때 주어졌었습니다(행 3:12, 16). 율법을 지킬 때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행함으로가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창 15:6은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증거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아들들이 된다는 것은 성경 원리에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네 안에서(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복이 이방인에게도 적용될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아브라함과 함께 의롭다 하심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 즉 율법을 지켜 완전케 되려는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람이 모든 법을 항상 지키지 않으면 저주 아래 있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신 27:26). 이 세상에 율법을 항상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은 성도들이라도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 완전케 되려는 자들도 저주 아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라는 말은 ‘행위로 혹은 법을 지킴으로’라는 말과 대조되는 말입니다. ‘산다’는 말은 ‘영원한 삶’ 곧 영생을 가리킵니다.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합 2:4)고 성경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성경말씀은 복음의 원리에 맞고 율법주의에는 맞지 않습니다. 율법은 믿음과 근원이 다릅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율법으로 인해 살 것이나(레 18:5), 믿는 자는 그 믿음으로 살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리는 모든 자는 저주받았느니라, 하였느니라.”(갈 3;14)고 선포합니다. 이 부분의 핵심 요절입니다. 한마디로, 율법주의의 오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역사적이며 객관적이며 대리적이며 완전한 사역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는 완전한 의입니다(롬 10:4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은 의는 완전한 의, 곧 도덕적 완전이며 거기에 무엇이 더 첨가될 것이 없습니다. 그분의 의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속박과 저주와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누립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믿는 자들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믿음으로 약속된 성령님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죄인들 속에 거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씻음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 속에 들어오셔서 거하시게 되셨습니다. 이 두 가지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결과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는 참으로 큰 복입니다.

 

윤사무엘 목사 ( 겟세마네교회 담임 / 겟세마네신학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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