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총리 메르켈의 신앙과 삶]“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 "교회는 기독교신앙이 내 삶의 모든 것이 되도록 만들었다"
[독일총리 메르켈의 신앙과 삶]“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 "교회는 기독교신앙이 내 삶의 모든 것이 되도록 만들었다"
  • 나관호 발행인
  • 승인 2021.03.04 2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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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 엄마 젖처럼 항상 먹다/
부친 목사와 모친 라틴어 교사의 장녀/
독일의 전통적 기독교 신앙유산 받다/
청년동맹 충성서약식에 참석하지 않고/
기독교인 신앙고백과 삶에 대해 진지해/
내면화, 체계화된 신앙, 삶 인도 나침반/ 

【뉴스제이】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독일 총리는 1954년 서독의 함부르크에서 루터교 목사인 호르스트 카스너와 라틴어 교사인 헤어린트 카스너 사이에서 삼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앙겔라(Angela)의 별명 '카시'(Kasi)는 단순히 그녀의 성, 카스너(Kasner)에서 파생되었다. 

메르켈은 태어난 지 6주 후에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프리그티츠로 이사한다. 아버지가 이곳 루터교회 청년부 담당목사로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는 약 270만 명의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물밀듯 탈출하던 상황이었지만, 동독 출신인 카스너 목사는 고향에서 목회하겠다는 일념으로 동독행을 택했다. 이어 1957년 동베를린 근처 우커마르크 지역 도시 템플린 외곽에 있는 발트호프 농장으로 옮겨 정착한다. 카스너 목사가 템플린 지역 목회자 교육 아카데미 원장으로 취임한 데 따른 것이다.

메르켈은 당시 동독 베를린 북부 시골에서 자랐다     Ⓒchildhoodbiography.com

발트호프는 1960년대 동독 사회주의 경제 안에서 유일하게, 재배한 농작물이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곳이었다. 이곳에는 교회가 운영하는 정신지체아 복지시설도 있었다. 메르켈은 이곳에서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고, 정신지체아들과 사귀고,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교회는 동독 사회주의 체제 내부에 존재했던 자유로운 사회적 공간 중 하나였다. 동독 지역은 기독교 전통이 깊게 뿌리내린 곳으로,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은 교회를 강제적으로 파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동독국가안전부는 카스너 목사를 위험인물로 지목하고 감시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목사는 공공의 적으로서 비난받는 직업이었고,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메르켈에게 아버지의 엄격한 신앙교육과 논리적 사유 훈련은 획일적인 사회주의적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인격과 개성을 보호받는 방어막이 되었다.

교회는 메르켈에게 삶의 근거지였으며, 이곳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소양을 습득했다. “교회는 기독교 신앙이 제 삶의 모든 것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메르켈은 회고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엄마의 젖처럼 항상 먹었다”고 메르켈의 친구는 회상한다.

메르켈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교회 '견진성사'(堅振聖事) 교육에 참석하면서 동시에 독일사회주의통일당 청년조직인 '자유청년동맹'에 가입한다. 그러나 충성 서약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메르켈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고백과 신앙의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신앙고백을 공식석상에서 표현하지 않고 내면화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된다. 내면화되고 체계화된 기독교 신앙이 메르켈의 삶을 인도하는 나침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메르켈은 1973년, 19살이 되는 해에 대학입학시험 '아비투어'(Abitur)에 응시해 최고점수를 받고,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물리학 공부를 시작한다. 이듬해 울리히 메르켈과 첫 번째 결혼을 하고 교회에서 결혼예식을 거행하지만, 8년만인 1982년에 이혼한다. 1986년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후 12월에 민주화운동 단체인 ‘민주개벽(DA)’에 가입해 언론 홍보담당관으로 활동한다. 1990년 3월 18일 동독 자유 총선거가 실시되어 로타 드마지에르가 총리로 선출되고, 메르켈은 정부 대변인으로 활동한다. 본격적인 정치적 행보가 시작된다. 10월 2일에 '기독민주당'(CDU)에 입당하고, 12월 2일 통일 독일 총선거에 뤼겐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된다. 이듬해인 91년 1월 18일 헬무트 콜 총리 내각 여성청소년부장관으로 임명되고, 94년 11월 17일 환경부장관이 된다.

1998년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이 총선에 승리하자 환경부장관에서 물러나고, 오랫동안 친구관계를 유지했던 베를린 훔볼트대학 화학과 교수 요아킴 자우어와 결혼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결혼예식을 올리지는 않는다. 전 남편의 성인 메르켈도 그대로 유지한다.

그녀의 멘토이자 기독민주당(CDU) 수장인 헬무트 콜 총리를 보좌하는 메르켈    Ⓒchildhoodbiography.com    

2000년 기독민주당 의장으로 선출되고, 2002년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 원내총무로 임명된다. 드디어 2005년 11월 22일 앙겔라 메르켈은 연방의회에서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선출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헬무트 콜 총리의 업적을 계승한 탁월한 지도력을 가진 총리로 화려한 조명을 받는다. 2007년 유럽연합 의장직과 G8 경제선진국협의회 의장을 역임하며 '유럽연합 헌장 제정'을 주도한다. 이어 2009년과 2013년, 2017년 총선에서 연거푸 승리하여 역사적인 4선 연임 여성 총리로서 독일을 유럽연합의 지도국으로 부상시켰다.

이러한 그의 막강한 지도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메르켈 총리는 정치 현장 속에서 스스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말없이 기독교의 숭고한 가치를 행동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목사인 아버지를 통해 독일의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신앙과 종교에 대해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종교도 나의 일정한 동반자이며 내 삶 전체를 위해 존재해 왔다”고 고백하곤 했다. 

신앙은 여성 물리학자가 통일 독일의 총리가 되어 독일의 경제 위기 극복하고 독일을 유럽의 최강 경제국가로 만들고, 최정상의 자리에서 4선에 성공한 비결의 하나이기도 하다.

참고로, '견진성사'(堅振聖事, Confirmatio)는 교구를 감독하는 주교 또는 주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사제가 그리스도인에게 거룩한 기름을 바르며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도하는 안수기도를 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성령이 임하게 하며, 믿음을 굳건히 하는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 일부 개신교 교회들의 '성사'이다. '성사'(고대 그리스어: μυστριον 뮈스트리온 , 라틴어: Sacramentum 사크라멘툼 , 영어: Sacrament 새크러먼트 ) 또는 성례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가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전달되는,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기독교의 예식을 말한다. 

참고기사 : Angela Merkel Childhood Story Plus Untold Biography Facts (childhoodbiography.com

 

나관호 목사 (뉴스제이 대표 및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칼럼니스트 / 문화평론가 / 치매가족 멘토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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