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슬픔 ‘유익’과 초상집 ‘지혜자’... “성경 속에는 '역설'로 다가오는 구절이 있다”
[나관호목사 칼럼] 슬픔 ‘유익’과 초상집 ‘지혜자’... “성경 속에는 '역설'로 다가오는 구절이 있다”
  • 나관호
  • 승인 2021.03.04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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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목사의 행복발전소 141]
얼굴에 근심하는 것, 마음에 유익/
좋은 의미 가진 '좋은 이름'은 축복/
초상집에서 지혜와 겸손을 배운다/

【뉴스제이】 사람은 과거의 경험과 삶이 기억 속에서 남아 현재를 만들어 가기도 합니다. 기억이 좋은 것을 일반적으로 ‘추억’(追憶)이라 하고, 한자로는 ‘쫓을 추’(追). ‘생각할 억’(憶) 을 씁니다. 생각을 쫓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별로인 기억’은 ‘추억’의 반대말이 없으니 ‘그칠지’(止)에 붙여 ‘지억’(止憶)라는 단어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큰 상처’를 뜻하는 라틴어 ‘트라우마’(Trauma)라 정의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물론 나쁜 기억이 반복되면서 트라우마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추억’과 ‘지억’(?)이 함께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연인이 바닷가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파도를 보며 웃다가, 갑작스런 갈매기 소리에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점심 메뉴를 정할 때 매운탕과 돈카츠 선택문제로 다투게 되어 밥도 못 먹은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추억과 지억(?) 사이, ‘추반지반’(追反止反)입니다.  

​나를 위해 사셨던, 천사 같으신 어머니 Ⓒ뉴스제이​
​나를 위해 사셨던, 천사 같으신 어머니     Ⓒ뉴스제이​

어머니와의 좋은 추억을 생각하며 이 칼럼을 씁니다. 그리고 어떤 ‘추억’과 ‘지억’에 대한 예를 찾아 글을 쓸까? 여러 생각 중 한가지 ‘지억’을 예로 들면 묵상한 성경구절과 어울릴 것 같습니다.

몇 년전, 어떤 사람이 전화를 하더니 나에게 ‘애경사’(哀慶事)에 참석 좀 하라며 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은 지인이나 친구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모른다하기에도 그런 애매한 관계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의 자녀의 결혼식 ‘경사’(慶事)에 참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기를 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의 경솔함에 황당했습니다, 애매한(?) 관계지만 연락을 받았다면, 지극히 참석 못할 상황이 아니라면 아마 참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난 연락 받은 적이 없는데...”

나는 ‘경사’(慶事)보다 ‘애사’(哀事)는 거의 빠지는 일이 없습니다. ‘애사’는 어떻게 해서든지 꼭 참석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천국가셨을 때, 나는 지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여동생과 매제와 함께 가족장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떤 교회나 기관에 몸담고 있지 않았고, '초청설교'와 '강의'만 하는 입장에서 ‘부고’(訃告, obituary)를 알리는 것이 맞을까? 하다가 내 성격과도 맞지 않고, 어머니에게는 외로우실 수 있지만 일절 알리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표현하면 '조의금'을 원하는 것으로 오해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현직에 없었으니까...

내 성격을 아시는 천국의 어머니도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깔끔하게 수목장으로 어머니를 모셔드려 행복했습니다. 

나와 매제도 타인들의 ‘애사’에 거의 빠지지 않았지만, 나의 ‘애사’에는 지인들에게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타인의 ‘경사’보다 ‘애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는 것은 성경말씀 때문이기도 합니다.   

성경 속에는 때로 세상의 일반적인 상식(?)이나 개념이 역설로 다가오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전도서 7장에 나오는 ‘지혜 자와 우매한 자’에 대한 삶의 교훈입니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전도서 7:1-4)

“A good name is better than fine perfume, and the day of death better than the day of birth. It is better to go to a house of mourning than to go to a house of feasting, for death is the destiny of every man; the living should take this to heart. Sorrow is better than laughter, because a sad face is good for the heart. The heart of the wise is in the house of mourning, but the heart of fools is in the house of pleasure.” (Ecclesiastes 7:1-4)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좋은 이름’이 ‘기름’ 즉, ‘향수’(fine perfume)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이 복됩니다. 참고로, 아버지가 지어주신 내 이름 ‘관호’는 ‘너그러울 관’(寬), ‘넓을 호’(澔)입니다. ‘寛’(너그러울 관)은 “산양이 있을 정도의 넓은 집, 또는 산양이 보기에 넓은 집을 뜻을 가진 글자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澔’(넓을 호)는 ‘白’(흰 백)과 ‘告’(고할( 고)로 이루어져 ”하얗고 빛나게 말하라“는 의미입니다. 

아버지는 내가 출생 후 장차 목사가 될 것으로 아셨는지 ‘선경지명’으로 내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이름은 사람들에게 불려지는 것이니 ‘이름처럼 된다’며 이름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성경도 ‘좋은 이름’(good name)이 ‘좋은 기름=좋은 향수’(fine perfume)보다 낫다고 가르칩니다.

천국가신 한세대 김성혜 총장님 묘원에서 취토(取土)하며  인생을 깨닫다   Ⓒ뉴스제이
천국가신 한세대 김성혜 총장님 묘원에서 취토(取土)하며 인생을 깨닫다    Ⓒ뉴스제이

그리고 ‘슬픔’이 ‘웃음’보다 나은 것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슬픔’은 결코 나쁜 것(?)만이 아닙니다. 또다른 유익입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혼인집’보다는 ‘초상집’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혼인집’보다 ‘애사’에 더 신경을 쓰는 사람이 지혜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즉, 시간 앞에 ‘겸손’하라는 말입니다.

지금, 몸이 아파 슬픈 환경에서 울고 있는 분이 계신가요? 힘내십시오. '슬픔'이 또다른 위로가 되고, 가난해진 마음이 '깊은 영성'을 만들 것입니다. '슬픔'만이 지금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웃의 ‘초상집’을 방문하여 위로자가 됩시다. 지혜자의 마음이 그곳에 있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계시니까요. 임마누엘!!!!!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대표 및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조지뮬러영성연구소 소장 / 대중문화 및 교회사 연구교수 / 치매가족 멘토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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