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의 일본 기독교인 탄압문서 발견 ... "일본 지배계층 구조, 기독교인이 제거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
400년 전의 일본 기독교인 탄압문서 발견 ... "일본 지배계층 구조, 기독교인이 제거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
  • 에쉴리나
  • 승인 2021.02.27 1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처형 및 추방, 당시 선교사 진술 입증/
‘일본 기독교의 위대한 역사적 발견”/
16C 말부터 17C 초까지 기독교 탄압/

【미국=뉴스제이】 에쉴리나 통신원 = 일본에서 400여 년 전에 크리스천인 '하야토 카가야마'(Hayato Kagayama)의 순교와 ‘겐야 오가사와라’(Genya Ogasawara)의 추방 처벌을 지시한, 당시 영주였던 ‘호소카와 타다오키’(Hosokawa Tadaoki)가 내린 명령의 배경이 기록된, 호소카와 가문의 1차 사료가 발견됐다. 

일본에서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진행됐던 기독교인 탄압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다. 일본에서는 기독교의 억압이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증가했으며, 이 시기에 많은 선교사와 일본 신자들이 순교했다.

▲일본에서 400여 년 전 가가야마 하야토의 처형과 오가사라와 겐야의 처벌을 지시한 호소카와 가문의 1차 사료가 최근 발견됐다.     ⓒ해리티지데일리 캡쳐(이미지 크레디트 : 구마모토 대학도서관)
일본에서 400여 년 전, 크리스천인 하야토 카가야마의 처형과 겐야 오가사라의 추방 처벌을 지시한, 당시 영주였던 ‘호소카와 타다오키’(Hosokawa Tadaoki)가 내린 배경이 기록된 호소카와 가문의 1차 사료가 발견됐다.     ⓒ해리티지데일리 캡쳐(이미지 크레디트 : 구마모토대학 도서관)

세계적인 고고학 매체인 《해리티지데일리》(Heritage Daily)는 1600년부터 1620년까지 고쿠라(Kokura) 영토의 영주였던 ‘호소카와 타다오키’(Hosokawa Tadaoki)가 내린 두 가지 결정에 대해 주목했다.

영주 타다오키는 당시 호소카와(Hosokawa) 가문의 수장이자 기독교인인 ‘디에고 하야토 카가야마’(Diego Hayato Kagayama)에 대해 처형을, 기독교 신자였던 ‘겐야 오가사와라’(Genya Ogasawara)에게는 추방 처벌을 명령했다. 

두 기독교인의 '순교와 추방'은 이전에 ‘예수회’(Jesuit) 선교사들이 로마로 보낸 보고서를 통해서만 알려졌다. 그러나 호소카와 가문에서 만든 주요 역사 문서가 발견됨에 따라, 당시 선교사들의 진술에 신빙성을 더하게 됐다.

《해리티지데일리》에 따르면, 16세기 중반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자비에르’(Francis Xavier)가 일본에 도착한 후, 일본 내 기독교 신자들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중에서도 지역 및 봉건 영주들과 신하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며, 특히 규슈 지방과 그곳 영주인 호소카와 가문에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생겨났다.

1614년 12월 에도 막부(Edo shogunate)가 전국적으로 기독교를 금지했고, 호소카와 가문의 다수가 신앙을 포기했지만 가신들 중 두 사람은 이를 거부했다.

‘하야토 카가야마’(Hayato Kagayama)는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던 세 명의 영주를 섬긴 무장이었고, ‘겐야 오가사와라’는 그의 사위인 것으로 전해진다. 영주인 타다오키는 두 사람에게 종교를 바꾸고 배교할 것을 명령했으나, 두 사람은 끝까지 거부했고 신앙을 지켰다.

예수회 선교사가 로마로 보낸 서한에 따르면, 타다오키는 1619년 9월 8일 마침내 하야토에게 참수 명령을 내렸으며, 겐야와 그의 가족들은 범법자들이 사는 외딴 시골 마을로 추방시켰다. 그러나 겐야와 가족들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1635년 12월에 구마모토에서 모두 처형됐다.

구마모토대학의 ‘에이세이분코연구소’(Eisei Bunko Research)는 호소카와 가문의 첫 번째 가신인 “마쓰이 가족문서”(Matsui Family Documents) 기록을 분석하던 중, 이 명령이 담긴 서한을 발견했다. 연구에서 발신자는 ‘로쿠자에몬 야노’(Rokuzaemon Yano) 외 3명으로 추방당한 겐야를 관리한 공무원이었고, 수신인은 호소카와 가문의 초대 영주이자 고쿠라 지역 최고 행정관인 ‘오키나카 마츠이’(Okinaga Matsui)로 밝혀졌다.

타다오키 경의 칙령을 받았습니다.

1. ‘하야토 카가야마’(Hayato Kagayama)에 대한 사형 (순교) :
어젯밤 (9월 8일) '하야토 카가야마'를 처형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 '겐야 오가사와라'(Genya Ogasawara)' 가족을 살리십시오 :
우리는 즉시 '겐야 오가사와라'(Genya Ogasawara)에게 겐야의 아버지 충성에 대한 감사로 그의 생명을 구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이에 겐야는 “주님에게 너무 감사해서 말을 잃어 버렸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녀를 포함한 가족의 생명을 살리겠다'는 주님의 뜻을 전하자 그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우리 주님께 답장을 썼습니다. 또한 겐야는 “세 사람이 타다오키 경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명심하십시오.

3. '겐야 오가사와라'(Genya Ogasawara)의 가족 관리 :
우리는 지역 마을 관리들에게 겐야를 면밀히 감시하고 그를 붙잡아서 그가 감금 구역에서 탈출하려고 하면 즉시 알려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를 잡는 것이 어렵다면, 그를 처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합니다. 이상이 발생하면 즉시 보고하겠습니다.

- 9월 9일 오후 5시
발신자(From): ‘로쿠자에몬 야노’(Rokuzaemon Yano), ‘진베이 요시다’(Jinbei Yoshida) 그리고 ‘헤이 토미시마’(Ihei Tomishima)
수신자(To): 퍼스트 리테이너(First Retainer) ‘오키나가 마츠이’(Okinaga Matsui)

이 두 사람의 처벌은 1619년 52명의 천주교 신자가 사망한 “겐나의 대순교”(Great Martyrdom of Genna in Kyoto-1619년) 직후에 발생했다. 연구원들은 고쿠라 영주 또한 이 박해의 여파로 처형을 단행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일본의 기독교 박해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인 “겐나의 대순교” 이후, 일본의 영주들과 사무라이 등 지배 계층에서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전면 금지되었다.

오가사와라 겐야의 처벌 당시 예수회 선교사들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그는 영토에 알려지지 않은 농부와 무법자가 있는 시골로 추방되었습니다.
▶그들은 하층의 장인과 가난한 농민들과 섞여서 그들이 가장 낮은 계층의 노예나 차별된 사람들처럼 취급되었습니다.

‘츠구요 이나바’(Tsuguyo Inaba) 교수는 이 역사 문서에 대해 “우리는 지금까지 로마에서 온 예수회 선교사들의 보고를 통해서만 ‘하야토 카가야마’의 순교와 ‘겐야 오가사라와’의 처벌을 알 수 있었을 뿐 정보는 여전히 불확실했다”며 “그러나 호소카와 가문이 작성한 1차 사료가 발견되면서 더 많은 사실이 알려졌다”고 밝혔다.

츠구요 교수는 이 문서가 일본의 지배계층 구조에서 기독교인이 제거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로, “일본 기독교의 위대한 역사적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안보면 후회할 기사
카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