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예배]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하자” (엡4장)
[읽는 예배]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하자” (엡4장)
  • 윤사무엘
  • 승인 2021.02.2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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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보는 설교문] 할렐루야! 다음 설교문과 예배자료는 2021년 2월 21일 주일 (사순절 첫째 주일) 겟세마네장로교회(인청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성도와 목회자들을 섬기는 윤사무엘 목사의 ‘선물’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기도와 경건생활로 예배를 준비합시다. 이 자료를 자유롭게 활용하셔도 좋습니다.  살롬살롬!

[최신간] 윤사무엘 목사 저, 『복음으로 본 세계교회사』 (쿰란출판사, 2020) 880쪽, 35,000원.

그리스도의 복음(8):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하자” (엡4장)

본문: 에베소서 4:1~32

윤사무엘 목사

요절: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엡 4:15)
주제: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새 생활 하자.
교독문: 124번(사순절 1), 예배의 부름: 마 16:24-25
찬송: 550장(통 248장), 436장(통 493장), 430장(통 456장)

일자: 2021년 2월 21일 주일 (사순절 첫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교회]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에베소서 4장을 강해합니다. 엡4-6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윤리]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4장은 교회의 일체성과 새로운 피조물로 된 그리스도인의 신앙윤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 교회의 일곱 가지 하나 됨 안에서 믿음 생활 하라(엡 4:1-6)

1 그러므로 주님의 갇힌 자 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를 부르실 때에 허락하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2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참아 주며 3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너희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것 같이 한 몸과 한 성령님이 계시고 5 한 주님과 한 믿음과 한 세례[침례]가 있으며 6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

1절. ‘그러므로’라는 말은 엡 1-3장의 교회론을 요약하는 말로 ‘교회의 참된 터는 그리스도이며,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경륜이니’는 뜻입니다. ‘간청한다 beseech’는 말은 엄하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부드럽게 권한다는 말입니다. 간청하는 부탁의 말은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가라.”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로서 하나님의 그 구원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2절은 엡 4-5장의 요약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사랑과 거룩의 삶입니다.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사랑입니다. ‘모든 겸손’이라는 말은 모든 면에서 또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죄로 인해 죽었던 자이었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또 오래 참음으로 행하여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오래 참는 것은 사랑의 속성입니다(고전 13:4, 7). 우리는 상대방의 부족과 허물을 덮어주고 오래 참아야 합니다. 잠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벧전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심과 사랑으로 우리를 용납하십니다.

3절. ‘평안의 매는 줄’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화평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일치와 단합이며 불화와 분열이 아닙니다. 갈 5:20은 육신의 죄악들 가운데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 등을 열거합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입니다(요일 3:15). ‘성령님의 하나 되게 하신 것(헤노테스 ἑνότης henotes)’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의 하나 되게 하신 것 the unity of the Spirit’이라는 뜻입니다. ‘힘써 지키라 Endeavouring to keep’는 말은 인간의 연약성을 전제하면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분열하기 쉽고 성도들이 교만과 욕심과 미움에 빠지기 쉽기에 우리는 믿음과 진리와 의안에서 성령님의 하나 되게 하신 것, 곧 교회의 일체성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교회의 일체성을 일곱 가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4절. ① 몸이 하나입니다. ‘몸’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말합니다. 세상에 교회들이 많고 교파들이 많아도 또 우리가 속한 지교회는 달라도,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이며 모든 성도는 그 한 교회의 교인입니다. 택함받은 성도들은 중생과 회개와 믿음으로 이 한 몸 안으로 들어옵니다.

② 성령님은 한분이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며 인격적 영이십니다. 인간의 구원을 실제적으로 이루시며 죄인들을 중생시키시고 믿게 하시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모든 성도에게 보혜사 곧 위로자, 격려자, 권면자이시며 교회를 인도하시며 책망하시고 부흥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진리의 영이시므로(요 14:17) 모든 일을 성경 교훈대로 행하십니다. 참된 성령 운동은 에스라 때의 말씀사경회처럼 성경의 성실한 연구와 강해와 순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③ 우리의 부르심의 소망도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미래의 소망으로 부르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의인들의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에서의 영생입니다. 모든 성도는 다 이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5절. ④ 주님도 하나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에 증거되신 대로 말씀이 육신이 되셨고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죽으신 지 3일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후에 승천하셨고 장차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에 증거된 이 예수님 외에 다른 주님이 없습니다.

⑤ 믿음도 하나입니다. 역사적 정통교회들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일치하는 믿음의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처녀 탄생, 그의 대속, 부활, 재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근거한 죄인들의 중생(重生)과 칭의(稱義), 성화, 영화, 마지막 심판, 몸의 부활, 영생, 지옥과 천국 등을 믿습니다.

⑥ 세례[침례]도 하나입니다. 세례는 죄씻음을 상징합니다. 죄 씻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가능합니다(요일 1:7). 그러므로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마 28:19, 행 2:38) 베풀어집니다. 우리의 죄를 씻는 길은 예수님의 피밖에 없습니다.

⑦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도 하나이십니다. 영원무궁 자존하신 참 하나님은 한 분뿐이십니다. 이방 나라의 모든 신들은 다 거짓이다. 이 세상에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 계십니다. 십계명에서 밝히듯이 창조주, 구속주, 섭리주이신 하나님 이외는 신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1-3계명).

교회의 하나 됨에 대한 일곱 가지의 근거를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 한 주님, 한 성령님을 믿고 섬기기 때문에, 또 한 소망, 한 믿음, 한 세례[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참된 교회들은 이런 일곱 가지 교리적 주제들의 일치에 근거해서 온전한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영화 '예수' 중에서 

2. 영적인 선물(엡 4:7-16)

7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 9 (이제 그분께서 올라가셨은 즉 그것은 곧 그분께서 또한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려가신 그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 겸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13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14 이것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로 말미암아 교리의 모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 15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6 그분으로부터 온 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력 있는 일에 따라 모든 마디가 공급하는 것에 의해 꼭 맞게 함께 결합되고, 들어차서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느니라.

7-8절. 주님께서는 한 몸으로서의 교회를 완성하기 위하여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들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권한으로 은혜의 선물을 각 사람에게 다르게 주십니다. 특히 교회의 직분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다양한 은사들에 따른 것입니다. 8절에서 바울은 메시아 사역을 예언한 시 68:18을 인용함으로 그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가리키며,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라는 말은 메시아의 원수 곧 사탄과 악령들과 죄와 사망을 가리킵니다. 시편의 본문에서는 ‘사람들에게서 선물을 받는다’고 표현했으나, 오늘 본문에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원수들에게서 전리품들을 취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과 악령들과 죄와 사망을 정복하시고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님의 은사들을 나누어주셨음을 말합니다.

9-10절. ‘올라가셨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승천을 가리키고, ‘그가 먼저 낮은 곳으로 내리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가리키든지 그분께서 무덤 속에 묻히셨던 일을 말합니다. ‘모든 하늘 위에 오르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여 들어가신 천국은 지극히 높은 하늘임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목적은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입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대로 구원을 온 세상에 충만히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11절.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은사와 직분은 ‘사도 apostles’입니다. 사도는 열두 제자와 바울에게 주어진 은사요 직분입니다. 원문 성경에서 예외적으로 바나바도 두 번 사도로 불린 적이 있습니다(행 14:4, 14). 사도들은 복음의 선포자요 해설자이었습니다(롬 1:1). ‘대언자(=선지자) prophets’는 사도들처럼 복음 진리의 계시와 은혜를 받은 직분입니다. 유다와 실라 등은 대언자들입니다(행 15:32). 대언자의 사역은 주로 말씀을 선포하던 설교자였던 것 같습니다. 사도들과 더불어 신약시대의 대언자들을 교회의 기초라고 불렀습니다(엡 2:20). ‘복음 전하는 자 evangelists’는 빌립, 디모데, 디도 등 복음 전하는 일에 전념했던 직분을 가리킵니다. 행 21:8은 초대 교회가 뽑았던 일곱 사람 중 하나인 빌립을 ‘전도자’라고 불렀습니다. 또 바울은 디모데후서 4:5에서 디모데에게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말했습니다. ‘목사 겸 교사’라는 말 (투스 포이메나스 카이 디다스칼루스 τοὺς δὲ ποιμένας καὶ διδασκάλους tous poimenas kai didaskalous)은 하나의 정관사에 두 명칭이 접속사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은 동의 반복법, 즉 동격을 나타냅니다.

목사와 교사라기 보다 “목사 즉 교사”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문법에서 이를 The Granville Sharp Rule이라고 합니다. 본래 ‘목사’라는 원어(포이멘poimen)는 ‘(양이나 소를 치는) 목자’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양무리를 돌보는 자를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선한 목자이십니다(요 10:14-16). 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1:16). ‘치라’는 말(포이마이노poimaino)은 ‘돌보다, 다스리다, 인도하다’는 뜻입니다. 행 20:28에 보면,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님께서 그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오늘날 목사와 장로들의 회인 당회는 교인들을 돌보고 다스리고 인도하는 목양의 직무를 수행합니다. 목사를 ‘교사’라고 부른 것은 목사의 중요한 직무을 말합니다. 장로교에서 목사를 “가르치는 장로”(teaching elder)라고 부릅니다. 목회에 있어서 설교와 성경공부는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모든 교리적, 윤리적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딤후 1:11에서 바울 자신을 ‘복음 전파자와 교사’라고 부릅니다. 참된 목회자들은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계시된 신구약 66권의 성경 말씀을 가감 없이, 바르게, 충실하게 가르치기를 힘써야 합니다.

12절. 교회의 지도자의 직무는 성도를 완전케 하고 섬김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성도를 완전케 한다’는 것은 성도의 완전한 영적 성장을 말합니다. 골 1:28-29에서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고 말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을 세우심은 섬김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섬기는 지도력(servant leadership)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여러 가지 봉사의 일들이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 안에는 교회학교 교사들, 주방 봉사자들, 찬양대원들, 재정 관리인들, 주차요원, 청소 봉사자들이 필요합니다. 또 교회 지도자의 직무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모든 혼(soul)들이 다 구원받으면 그리스도의 몸은 수적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질적으로 말한다면,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각자 지식과 인격과 삶에 있어서 완전케 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웁니다.

13-16절. 그리스도는 완전하시고 이상적인 인격이십니다. 교회는 목회자들의 직무를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함에까지 자라서 완전한 사람을 이루어야 합니다. 목회의 목표는 단순히 개인들의 성화와 온전함뿐 아니라 또한 교회적 완전에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지식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함’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의 온전함을 말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본받을 수 없으나 그분의 인성의 완전함은 본받을 수 있습니다. 14절. 교회에게 영적 온전함이 필요한 까닭은 모든 인간적 교훈들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들은 과거에 어린아이들처럼 사람들의 속임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방황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들도 속고 다른 이들도 속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15절.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라는 말은 완전케 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진리를 말하다’는 원어(알레듀오 aledeuo)는 ‘참된 말과 행동을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과 진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본래의 인생의 성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범죄함으로 그 본래의 거룩하고 의로운 성품을 잃어버렸고 심히 죄악된 자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제 죄악된 옛 성품을 다 버리고 사랑과 진실 안에서 자라서 온전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적 성장의 목표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성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그분은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은, 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의 이치를 사람의 머리와 몸에 비유한 것입니다.

사람의 머리[두뇌]는 몸을 자라게 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머리가 상하면 몸이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건전한 머리는 몸을 성장케 합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이상적 머리이십니다. 16절.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서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활동하여 자라며 사랑 안에서 건립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한 완전한 사람’으로 세우는 힘의 근원이 되십니다. 개인이나 교회의 영적 성장과 온전함은 사람의 인위적 행위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 곧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3. 옛 사람과 새 사람(엡 4:17-32)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님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다른 이방인들이 그들의 헛된 생각 속에서 걷는 것 같이 걷지 말라. 18 그들은 지각이 어두워졌으며 그들 속에 있는 무지함과 그들 마음의 눈먼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져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을 지나쳐 자기를 색욕에 내주고 탐욕을 내어 모든 부정한 것을 행하였으되 20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이전 행실에 관하여는 너희가 속이는 것으로 가득한 욕심들에 따라 부패한 옛 사람을 벗어 버릴 것을 가르침을 받았으니 23 너희의 생각의 영 속에서 새롭게 되라. 24 또 너희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된 새 사람을 입을 것을 가르침을 받았으니 25 그런즉 거짓말을 버리고 각 사람이 자기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라. 우리는 서로 지체니라. 26 너희는 화를 내도 죄는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진노하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 도둑질을 한 자는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말고 오히려 노동을 하여 궁핍한 자에게 줄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선한 것을 할지니라. 29 부패한 대화는 결코 너희 입 밖으로 내지 말고 오직 세워 주는 일에 쓸 좋은 것만을 말하여 그것이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쓴 것과 진노와 분노와 소리 지르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고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

17-19절. ‘이제부터는’이라는 말은 ‘구원받은 후부터는’이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제부터 이방인들처럼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의 여덟 가지 점들을 증거합니다.

첫째로, 17절에 이방인들은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원어(누스 nous)는 ‘생각’이라는 뜻인데, 이방인들은 참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고 허무한 것을 생각합니다.

둘째로, 18절에 이방인들은 총명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육신적인 일이나 물질적인 일에는 지혜가 있을지 모르나, 인생이 참으로 알아야 할 바 하나님과 죄와 구원에 대한 총명과 깨달음이 없습니다.

셋째로, 이방인들은 무지함 가운데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살면서도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고 인간의 목적도, 참된 도덕 원리도 모르고 있습니다.

넷째로, 이방인들은 마음이 굳어져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마음이 완고하여 자신의 잘못된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생각대로만 살며 하나님의 진리를 진지하게 찾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비교적 순수해서 진리를 들을 때 잘 듣지만, 어른들은 마음이 고집스러워서 바른말도 잘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다섯째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 생명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므로, 그분을 알지 못하고 그분을 멀리 떠나 사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며, 영생의 길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여섯째로, 19절에 이방인들은 감각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도덕적 감각이 없습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있지만, 자기의 이익을 따라서 그 도덕적 감각은 억눌리고 억압됩니다.

일곱째로, 이방인들은 자신들을 방탕에 방임하고 있습니다. ‘방탕’이라는 원어(아셀게이아 aselgeia)는 ‘육욕, 호색, 방탕’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인간관계의 죄악들 중 첫째는 음란입니다. 인간은 음란하고 방탕합니다.

여덟째로, 이방인들은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합니다. ‘모든 더러운 것’이란 온갖 죄악들을 가리킵니다. 죄는 사람의 아름다운 인격을 더럽히고 아름다운 부부관계와 가족관계, 나아가 이웃 관계를 더럽힙니다. 죄 없는 사회는 아름답고 평화로울 것이지만, 죄악된 세상은 정신적, 육신적 상처들로 얼룩져 있습니다. 의는 깨끗한 옷과 같고, 죄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이런 여덟 가지 점들이 이방인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구원받기 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옛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이방인의 모습들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20-24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 모든 죄악된 것들로부터 떠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명령을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과거의 죄를 회개했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 자체이시며 진리가 그분 안에 있으십니다. 22절부터 24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가르침을 받은 내용을 말합니다. 그것은 모든 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라는 구원의 초청입니다.

22절. “이전의 생활 방식에 대하여, 너희는 속이는 욕심들을 따라 부패되어 가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입니다. ‘이전의 생활 방식’이라는 원어(카타 텐 프로테란 아나스트로펜 kata ten proteran anastrofen)는 ‘썩어져 가는’ 원어(톤 프데이로메논 ton fdeiromenon) ‘부패되어가는’와 연결됩니다. ‘유혹의 욕심’이라는 원어(타스 에피두미아스테스아파테스tas epiduastes apates) ‘속이는 욕심들’이라는 뜻입니다, 욕심들은 처음에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를 불행으로 이끌기 때문에 속이는 것입니다. 옛사람은 구원받기 전의 자아(自我)를 말합니다. 이것은 앞절들에서 말한 이방인들의 모습의 요약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속이는 욕심들을 따라 부패되어 가는 삶입니다. ‘벗어버리고’라는 원어(아포데스다이 apodesdai, 과거부정사)는 단회성(單回性)을 보입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받을 때 단번에 이루어지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반복될 수 없는 구원 사건입니다. 23절. “너희의 생각의 영 속에서 새롭게 되라.” ‘생각의 영속에서’라는 원어(토 프뉴마티 투 누스 휘몬 to pneumati tou' noos hymon)으로, 영의 기능은 지식과 감정과 의지입니다. 특히 지식 혹은 생각을 강조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생각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행동도 달라집니다. 바른 생각은 바른 행동으로 나타나고, 잘못된 생각은 잘못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구원은 생각의 변화입니다. ‘새롭게 되어’라는 원어(아나네우스다이 ananeousdai, 현재부정사)는 계속성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생각의 변화에서 시작되지만, 그 생각의 변화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적으로 진행됩니다. 심령의 새로움은 평생 계속됩니다.

24절. ‘하나님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다는 말은 새사람의 내용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본래의 내용임을 말합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이라는 원어는 ‘의와 참된 거룩함’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은 ‘의와 참된 거룩함’입니다. ‘입으라’는 원어(엔뒤사스다이 endysasdai, 과거부정사)는 단회성(單回性)을 말합니다. 그것은 지금 성도들에게 명하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 믿기 전에 우리가 받았던 구원 초청의 내용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는 구원 초청은 바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옛사람의 상태에서 새사람의 상태로 옮겨지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고 단번에 이루어집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25-28절에서 새로운 사람의 모습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① 25절.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거짓을 버리고 서로 진리를 말하라고 교훈합니다. 죽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

② 26-27절. “너희는 화를 내도 죄는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진노하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고, 화를 내지 말고 화를 다스립시다(anger management, 창 4:7). 사람은 분을 낼 때 말이나 판단이나 행동에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과격한 감정, 미움, 지나친 말, 불완전한 판단과 성급한 정죄, 심지어 살인 등의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노가 날 때 우리의 감정이 지나치고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치우치지 않도록 조금 멈추어 생각하고 혹은 기도하면서 차분하게 신앙적, 이성적 판단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③ 28절 “도둑질을 한 자는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말고 오히려 노동을 하여 궁핍한 자에게 줄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선한 것을 할지니라.” 도둑질은 남의 돈이나 물건을 부당하게 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과 탐심, 또 쉽게 살려는 불성실한 마음에서 생기는 일입니다. 돈 벌기가 어렵고 땀 흘려 일하기는 싫기 때문에 남이 벌어놓은 것을 훔쳐서 쉽게 사용하려는 것이 도둑질입니다. 성도는 제 손으로 부지런히 수고하여 수고의 대가를 누리며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선한 일을 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④ 29 상반절 “부패한 대화는 결코 너희 입 밖으로 내지 말고” ‘부패한’이라는 원어(사프로스 sapros)는 ‘썩은, 나쁜, 불건전한’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불건전하고 나쁜 말을 삼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라가’[빈 머리, 바보]라고 말하면 공회에 잡혀가고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2).

⑤ 29 하반절. “오직 세워 주는 일에 쓸 좋은 것만을 말하여 그것이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우리는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덕을 세운다’는 말은 남에게 유익을 끼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해를 끼치는 말을 하지 말고 유익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잠 10:20-21, “의인의 혀는 천은(天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잠 12:18,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⑥ 30절.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영께서는 피조세계를 초월해 계시며 도덕적으로 성결하십니다. 죄인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거룩한 정신과 거룩한 마음, 거룩한 생각, 거룩하게 살려는 의지를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 안에서 구속(救贖)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인을 치는 것은 확인하는 뜻입니다. 우리는 무슨 문서를 확인할 때 거기에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합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거하시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하나님의 확인입니다.

⑦ 31절 “너희는 모든 쓴 것과 진노와 분노와 소리 지르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쓴 것’이라는 원어는 독한 생각을 뜻합니다. 거기에서 ‘진노와 분노’가 나옵니다. 진노는 악한 생각에서 나오고, 분노는 ‘소리지르는 것(떠듦)과 비방’으로 나타납니다. 말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합니다. 실상, 말은 사람의 인격의 표현입니다. ‘악의(惡意)’라는 말은 남을 해치려는 소원과 계획을 가리킵니다. 이 말들은 점점 심해지는 과정이라고 보이는데, 처음에는 ‘모든 쓴 것’이요, 그 다음에는 ‘진노와 분냄’, 그 다음에는 ‘소리지르는 것과 비방하는 것’, 그리고 마침내 ‘모든 악의’로 발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 모든 악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⑧ 32절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고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 ‘친절히’는 원어(크레스토스 crestos)는 ‘자비롭다, 친절하다’는 말입니다. ‘상냥히 여기다’는 원어(유스프랑크노스 eusplancnos)는 ‘동정적이다, 불쌍히 여기다’는 뜻입니다. 또 서로 용서하는 자들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용서는 사랑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지식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인 완전한 인격으로 성장합시다. 사랑 안에서 성장할 때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옛 사람은 버리고 새 사람답게 살아갑시다. 진리안에 행하고, 화를 다스리며, 도둑질하지 말고 정당한 일을 하며, 더러운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천국 언어를 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근심하지 말고, 인자한 언행으로 서로 용서하며 살아갑시다.

찬송 600장(통 242장)은 “에베소서 주제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교회의 참된 터는 우리 주 예수라 그 귀한 말씀 위에 이 교회 세웠네.
주 예수 강림하사 피 흘려 샀으니 땅위의 모든 교회 주님의 신부라

2) 온 세계 모든 교회 한 몸을 이루어 한 주님 섬기면서 한 믿음 가지네.
한 이름 찬송하고 한 성경 읽으며 다 같은 소망 품고 늘 은혜 받도다.

3) 땅위의 모든 교회 주안에 있어서 하늘의 성도들과 한 몸을 이루네.
오주여 복을 주사 저 성도들같이 우리도 주와 함께 늘 살게 하소서.

[오늘의 기도]

하나님, 귀한 교회를 주셔서 옛 사람의 모습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옷 입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진리 말씀속에 항상 새사람으로 거듭나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데 힘쓰게 하옵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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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1)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매일 매 순간 동행하게 하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예수님을 닮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2월22일(월) 찬송 436장(통 493장), 235장(통 222장) 시43편 (나의 힘)
23일(화) 436장(통 493장), 235장(통 222장) 44편 (종일 하나님 자랑)
24일(수) 405장(통 458장), 240장(통 231장) 45편 (진리, 온유, 공의)
25일(목) 405장(통 458장), 240장(통 231장) 46편 (나의 피난처, 힘)
26일(금) 406장(통 464장), 489장(통 541장) 47편 (하나님을 찬송하라)
27일(토) 406장(통 464장), 489장(통 541장) 48편 (만군의 여호와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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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신학교 봄학기: 매주 월요일 만 수업.

2021년 2월 15일 월. 오전10시~오후5시 [종강. 5월 10일 월]

장소: 대전광역시 대덕구 우암로 396(비래동 52-1), 3층
연락처: 010 9113 1127, 010 4907 7483

*후원방법:

1) 정기적으로 기도해 주십시오. 기도후원
2) 재정 후원(일시적, 정기적)을 부탁합니다. 액수는 자유롭게.

후원계좌. 농협 302-0280-1002-11 (Yun Samuel)
하나 263-890778-58307 (Yun Samuel)
우체국 107 367 0205 8032 (Yun Samuel)

3) 바이블아카데미 저서 구입:

[신간] 윤사무엘 목사 저, 『복음으로 본 세계교회사』(쿰란출판사, 2020), 880쪽, 35,000원
-- 『한국교회와 바른성경이해』,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한국교회와 성지순례』 등 3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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