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바울 신앙과 존귀한 이름 '성도’(saint)
[영성칼럼] 바울 신앙과 존귀한 이름 '성도’(saint)
  • 윤사무엘
  • 승인 2020.12.02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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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가 되었다/
‘평안’, 구원에 동반되는 '복'이다/
'참 교회', 성도들 서로 사랑하는 교회/

【뉴스제이】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 직분을 받았다는 분명한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saint)는 매우 존귀한 이름입니다. 죄로 인하여 더러워졌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로 죄 씻음 받고 단번에 거룩해졌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의 존귀한 이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faithful brethren in Christ)이란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가족이며 천국의 백성입니다.

골로새서 1장 2절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은혜와 평강[평화]’은 사람들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입니다. ‘은혜’는 죄 씻음과 구원의 복이요, ‘평안’은 그 구원에 뒤따르며 그 구원에 동반되는 복입니다. ‘평화’는 마음의 평안뿐 아니라, 몸의 건강, 물질적 안정, 사회적 평화도 포함합니다.

‘은혜와 평안’은 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개역이나 개역개정역에서는 ‘은혜와 평강’ 앞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를 삭제했는데 개혁자들의 성경대로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골로새 교인들을 위하여 항상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할 때마다’라는 원어는 ‘항상 기도하면서’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을 위한 기도는 귀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우리도 교회를 위해, 다른 성도들을 위해, 목사와 교역자들을 위해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항상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 때문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구원의 생명입니다. 믿음은 큰 보화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모든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의 주신 새 계명이며 참 교회의 모습입니다. 바른 교리 사상을 가지고 바른 신앙을 고백하고, 배교의 시대에 배교에 따라가거나 배교와 타협하지 않고 잘못된 연합운동에 참여치 않고 그것으로부터 분리된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참 교회'는 또한 성도들 간에 서로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또한,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가진 소망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성도들의 소망은 그들을 위해 하늘에 쌓아둔 것들, 즉 천국과 부활과 영생 등 영광스러운 내용입니다(롬 8:18).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는 원어는 ‘복음 진리의 말씀에서 들은 것’이라는 뜻으로 소망의 내용이 복음 진리 안에 제시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영광스러운 천국과 부활과 영생이 바로 구원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은 바로 이 영광스러운 내용을 의미합니다. ‘복음 진리의 말씀’이라는 표현은 복음이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진리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른 곳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님 안에만 있고 하나님의 주신 복음 안에만 있습니다. 그 내용이 구원 소식이고, 영광스런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복음의 내용,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진리를 가리킵니다. 골로새서 1장 6절 끝에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고 번역되어 있는데 개혁자 성경(킹제임스)에는 ‘자라는도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냥 ‘열매를 맺었다’인데 이 말은 구원받은 것을 뜻합니다. 이미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원의 열매들입니다. ‘깨닫다’는 원어(에페그노테 ἐπέγνωτε epegnote)는 ‘참된 지식에 도달하다, 바르게 인식하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참으로 깨달을 때 옵니다.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장로교회 담임 / 겟세마네신학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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