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호목사 칼럼] 美 최고층 빌딩에 담긴 ‘미국정신’... “엠파이어스테이트 102층, 美 도착 청교도 102명 기억하며..."
[나관호목사 칼럼] 美 최고층 빌딩에 담긴 ‘미국정신’... “엠파이어스테이트 102층, 美 도착 청교도 102명 기억하며..."
  • 나관호
  • 승인 2020.11.0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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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 목사의 행복발전소 122]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102층은/
미국 도착 청교도 102명 기억하며/
재건축된, ‘원 월드트레이드센터’는/
美 독립선언해 1776년 맞춰 1,776 피트(541m)로/
청교도들, ‘추수감사예배’ 최초로 드려/
교회와 학교 먼저 세우라는 법 만들어/

【뉴스제이】 2001년 9월 11일, 나는 TV채널을 돌리다가 잠시 미국 CNN 방송을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이십여분 뒤 속보 현장방송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9.11 테러’ 발생 바로 직전 상황이었습니다. 납치된 비행기가 뉴욕으로 오고 있는데, ‘월드트레이드 센터’로 향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납치 비행기는 버지니아주 알링턴 군의 美 국방부 ‘펜타곤’으로 향하고 있다는 속보였습니다.

얼마 후, 자살테러 납치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충돌하는 장면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아비규환이 되어 고함과 비명 그리고 전쟁터 같은 현장 모습이 고스란히 중계되고 있었습니다.

테러범들이 왜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을 공격한 것일까요? 그것은 ‘월드트레이드 센터’가 미국의 자존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1972년 건축된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은 세계 최고 높이의 빌딩으로 세계 1등 국가 미국을 대변하는 아이콘이었습니다. 테러범들은 미국을 상징하는 최고 빌딩을 무너트림으로써 미국 자존심에 큰 타격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는 핵무기가 폭발한 지점을 뜻하는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 불렸고, 무너진 2개의 세계무역센터 건물 터가 네모진 자리 그대로 2개의 폭포와 연못으로 조성이 됐다.

911 테러 이후,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는 핵무기가 폭발한 지점을 뜻하는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 불렸고, 무너진 2개의 세계무역센터 건물 터가 네모진 자리 그대로 2개의 폭포와 연못으로 조성이 됐습니다. 당시 건물이 들어섰던 바로 그 자리를 결코 잊지 않고 테러에 대한 교훈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무역센터 1동(North)과 2동(South) 건물 자리에 ‘Pool’을 만들어 911 테러로 인한 희생자들의 이름을 기록했습니다. 그 외에도 ‘911 메모리얼 박물관’ 등, 세계무역센터 재건립 프로젝트로 총 6동이 건설되었습니다.

2014년 11월 3일에 새로 재건된 세계무역센터, '원 월드트레이드센터'(One World Trade Center /1 WTC)는 지상 104층, 지하 5층 규모이며, 총 높이는 미국이 '독립선언'을 한 해인, 1776년을 따라 ‘1,776 피트’(541m)로 건축해 '미국정신'을 담았습니다. 이렇게 미국인들은 테러로 폐허가 된 역사현장에 미국에서 가장 높고 세계에서 6번째로 높은 빌딩을 건축, 미국의 '독립정신과 개척정신'을 담아 후대에 전하고, 영원히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기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4년 11월 3일에 새로 재건된 세계무역센터 "원 월드트레이드센터(1 WTC)"가 개장되었고, 지상 104층, 지하 5층 규모이며, 총 높이는 미국이 독립선언을 한 연도 1776년을 따라 ‘1,776 피트’(541m)로 지어져 미국정신을 담았다. 그리고 ‘911 메모리얼 박물관’ 등, 세계무역센터 재건립 프로젝트로 총 6동이 건설되었다.

또다른 '미국정신'이 1931년 4월 30일 해질 무렵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허버트 후버(Herbert Clark Hoover) 미국 31대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그와 동시에 뉴욕 맨해튼 섬 5번가와 34블록의 51번 도로변에 위치한 102층 규모의 웅장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 전체에 환하게 불이 켜졌습니다.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들은 높이 381m의 거대한 마천루를 올려다보며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쳤습니다.

이로써 세계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가 기록되었다. 높이 381m, 6,400개의 창문, 67개의 엘리베이터, 2,500개의 화장실을 갖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뉴욕시 맨해튼 동부에 42번가와 렉싱턴 거리의 교차점에 1년 전인 1930년에 완공되어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하던 77층, 높이 319.4m의 위용을 자랑하던 ‘크라이슬러 빌딩’(Chrysler building)을 2위로 밀어내고 세계 최고층 빌딩의 위엄을 날렸습니다. 빌딩의 규모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410일 만에 공사를 끝냈다는 것입니다. 여의도 63빌딩의 공사 기간이 5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더더구나 건축시기가 1931년이라는 점도 놀라움입니다,

그런데 너무 짧은 공사기간 때문에 사람들은 건물이 곧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무도 건물에 들어가려하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1945년에 미국의 폭격기가 안개로 인해 빌딩의 78, 79층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건물이 붕괴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건물은 끄떡없었습니다. 그 후 건물에 들어오려는 세입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미국과 뉴욕시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1953년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최상층부에 안테나 탑이 설치되어 총 높이는 443.2m로 늘어났습니다. 이로써 1972년 맨해튼 남쪽에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들어서기 전까지 41년간 세계 최고층 건물로 군림했습니다.

1929년 기공식과 함께 건설 공사가 시작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건축가 슈립 람하먼이 설계했습니다. 수용 인원은 1만 8,000명 규모. 영화 ‘킹콩’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도 등장하여 유명세를 탄 이 건물은 초고속으로 공사가 진행되어 착공된 지 불과 2년 후인 1931년 4월 30일 준공식을 가졌습니다.

미국 내에서 현존하는 건물 중 고층 빌딩 순위로는 세계무역센터가 9·11 테러로 무너진 자리에 건립된 541m의 ‘원 월드트레이드센터’, 시카고의 ‘윌리스 타워’, ‘트럼프 타워’에 이어 4위입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미국의 야심이었고, 혁신이었으며, 개척정신과 경쟁정신이었습니다. 그리고 목표가 뚜렷한 의지였고, 미국정신을 담은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이 빌딩은 지금도 미국과 뉴욕시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이 102층인 것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대륙으로 영국에서 찾아온 위대한 ‘청교도들 102명을 기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미국인들은 과거의 영광과 고난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위대한 건축물에 '미국정신'을 담아 후대에 전하고 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이 102층인 것은 미국 도착 위대한 ‘청교도들 102명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올해는 미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이민 온 102명의 청교도들(Puritan Pilgrims)들이 미국에 온지 400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영국 청교도 102명은 지금부터 400년 전인 1620년 8월 5일(지금 달력으로 8월 15일), 영국 남해안 플리머스(Plymouth) 항구에서 '스피드웰(Speedwell)호'와 '메이플라워(Mayflower)호'에 나눠타고 美 대륙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초반에 ‘스피드웰호'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해 다시 영국으로 귀항했습니다. 한 달 후인 1620년 9월 6일에 결국, 메이플라워호만 25명의 선원과 102명의 청교도들이 승선하여 미국 동해(대서양) 중부지방 버지니아(Virginia)를 목적지로 삼고 재차 출발했습니다. 

남자 78명과 여자 24명 등 전체 102명이 출발했으나, 항해 도중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탄생해, '102명의 청교도'가 유지됐습니다. 그들은 그해 11월 11일 버지니아 대신, 미국 동북부 메사추세츠주(Massachusetts) 꼬리 끝부분인 프로빈스타운(Provincetown, MA)에 도착했습니다. 미국 동해안은 항상 '북서풍'이 불기 때문에 버지니아로 가지 못하고, 12월 16일에 현재의 플리머스(Plymouth) 항구에 정착했습니다. 그들은 영국을 떠날 때 항구 이름을 따라, 그곳을 플리머스라 명명했습니다. 그들이 5,440km나 되는 긴 항해를 한 이유는 단 하나,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청교도들은 토요일에 도착했지만, 주일을 지키기 위해 길고도 지루하고도 위험한 항해에 지쳤음에도 주일을 배 안에서 지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항해 도중에 그들은 찬송을 많이 불렀습니다. 대부분 시편 찬송으로 불렀습니다. "주일은 모두가 찬송만 불렀고, 기도를 많이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New World)에 정착한 것입니다.

그러나 청교도 순례자들은 도착한 후 형언할 수 없이 어려운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11월 중순 도착한 그들은 강풍과 눈보라 치는 혹독한 추위, 질병과 식량 부족, 원주민들의 냉대, 들짐승들의 위험, 거할 집 하나 없는 절박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해(1620~1621) 겨울을 지내는 중 102명 중 절반인 49명이 천국으로 돌아갔고, 52명만이 1621년 봄에 살아남았습니다. 4월 5일에는 메이플라호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지도자 윌리엄 브랫포드(William Bradford, 1590~1657)를 중심으로 계속 예배를 드리고 언약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6-7명의 건장한 사람들이 땔감을 마련하고, 침실을 만들고, 병자들을 간호하며, 병자들과 노약자들의 옷을 빨아 입혔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난을 이기도록 도울 사람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들 순례자 앞에 나타난 사람은 영국인 어부들로부터 영어를 배운 사람 사모셋(Samoset)이었습니다. 사모셋이 스콴토(Squanto; 영국선원들에 의해 구조되어 런던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던 왐파노악 부족민, a Wampanoag man)라는 원주민을 소개하게 되는데, 이는 순례자들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스콴토는 이 지방 출신으로 영국인의 포로가 되어 영국으로 잡혀가서 2년을 지내다 와서 사모셋 보다 영어가 능숙했습니다. 플리머스 청교도들이 이 지역사정을 알고 대처하게 도운 사람입니다.

청교도들이 플리머스에 도착해서 스콴토 덕분으로 그 지역의 부족 '왐파노억'(Wampanoag) 부족과 1621년 3월 22일에 평화 협정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 덕분에 순례자들은 도착한지 4개월 만에 그 지역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과 기술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봄에 찾아 온 인디언 형제 스콴토가 가르쳐 준대로 옥수수(Indian corn)와 감자를 심고, 물고기를 잡아먹고, 칠면조와 사슴 등을 사냥하여 고기를 조달하는 등 자발적으로 헌신했습니다.

생존한 청교도들은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가꾸어 여름과 가을, 기대 이상의 추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관계로 지내던 이웃 원주민 추장 마싸소이트(Massasoit, 일명 Ousamequin: 필그림 목사에게 플리머스 식민지를 운영할 수 있도록 조약을 맺고, 도움을 준 인물)와 6가지 계약을 맺은 대로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관계로 지내다가, 이듬해 1621년 가을 제법 풍성한 가을걷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 드리기 위한 추수감사절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 원주민인 왐파노억(Wampanoag) 부족을 초대했습니다. 추장 마사소이트(Masssoit)는 90여명의 부족과 같이 참석하고 순례자들은 힘닿는 대로 융숭한 대접을 하여 선린의 관계를 돈독히 하였습니다

청교도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첫 추수 감사예배를 드린 첫주일에도 온종일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찬송 부르고, 말씀을 받아 묵상했습니다. 둘째 날에는 칠면조 요리, 감자, 옥수수 요리 등을 만들어 서로 나눠먹고, 셋째 날에는 인디언 추장 마싸소이트와 90명의 원주민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친교 했습니다. 초청받은 90명의 원주민 인디언들은 칠면조 구운 요리와 호박파이(pumpkin pie)를 가져와 같이 친교를 나눴습니다.

그 후 청교도들은 먼저 마을이 될 구역을 정하고 그 중심부에 예배당을 짓고, 그 다음 학교를 짓고, 각자 집을 지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이처럼 자기 자신보다 하나님을 먼저 높였습니다. 636년에 미국 최초의 학교인 ‘보스톤라틴머스 학교’가 세워질 때 사람들은 마을의 인구가 100명이 넘으면 교회와 학교를 먼저 세우라는 법을 만들었고, 그 후 미국 대부분의 도시들은 중심가에 교회와 학교가 먼저 자리 잡았습니다.

청교도들이 처음 미국으로 왔을 때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을 합했고 그런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18세기에는 미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들로 인해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맨하탄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이 102층인 것은 미국 도착 위대한 ‘청교도들 102명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미국인들은 과거의 영광과 고난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대한 건축물에 미국정신을 담아 후대에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청교도들이 지향한 경건, 정결, 정직, 겸손의 삶을 회복하자는 ‘대각성 운동’(The Great Awakening Movement)이 코로나 이후 미국에서 일어나고, 그 뜨거운 영적 열기가 한국에서도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대표 및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문화평론가 / 긍정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 /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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