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희라] 감사와 순종, 인내가 만든 내 신앙
[배우 하희라] 감사와 순종, 인내가 만든 내 신앙
  • 배성하
  • 승인 2020.09.11 0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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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감사하고 순종하면서,/
그 시간을 버티며 지나가면/
반드시 더 깊은 은혜를 주실 거예요.” -배우 하희라
매주 전해지는 설교 말씀이 모두 나를 향한 말씀 같았습니다.

【뉴스제이】배성하 기자 = 저는 불교 신자였습니다. 아버지가 화교였기 때문에 현관 입구에 관음보살상이 서 있었고, 아침저녁으로 향을 피울 정도로 우리 가족 모두는 불교신자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크리스천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결혼 전, 친정어머니가 궁합을 봤는데, ‘절대 결혼하면 안 된다. 1년 전에 이혼 안 하면 장을 지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올해(2020년)로 결혼 27년째입니다.

자연스럽게 남편을 따라 교회를 나갔지만, 한 달도 안 되어 직분을 맡은 어떤 분에게 상처를 받게 되어 교회로의 발길을 끊었습니다. 당시에는 “어찌 믿음이 크다는 사람이 그럴 수 있는지, 교회에 절대 안나가겠다”고 결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사건 자체가 아니라 제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시어머니 눈치를 보면서 교회를 다녔는데, 좋은 핑계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그런지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 믿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못나고 교만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봐야 함을 훈련받게 된 것입니다. 아직도 훈련받고 받고 있는 숙제를 풀고 있습니다. 작은 사건으로 상처를 받고 속으로 미워하면서 ‘내 믿음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자책도 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마다 기도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면, 상한 마음을 위로받게 되어 조금씩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교회 대신 친정어머니와 절에 다녔습니다. 오래 전 돌아가신 시아버지를 위해 천도제도 지내고, 네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첫 아이를 위해 백일기도도 했습니다. 남편도 저 때문에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고맙게도 저를 15년이나 기다려줬습니다. 오랜 시간 묵묵하게 기다렸습니다. 너무 고맙고 감사하지요.

사실은 당시에 교회에 다닐 수 없었던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결혼 2년 전부터 가위눌림이 시작됐습니다. 단순히 악몽을 꾸는 게 아니라, 잠이 들거나 눈만 감으면 귀신들이 보였습니다. 심할 때는 낮에도 따라다녔고, 밤에 잘 때 무서워서 불을 켜고 잠들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였기에 세수도 눈을 뜨고 했습니다. 비눗물로 눈이 매워도 감을 수 없었습니다. 상갓집을 다녀오면 꿈에 귀신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무당도 찾아가고 부적도 붙였지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내가 개종을 하면 몸이 약한 첫째 아이가 더 아플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미신을 믿으면서도 마음은 늘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언젠가는 교회에 다시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야 한다면 확실한 징표를 보여달라'고, 막연히 하늘을 보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귀신은 눈에 보였지만,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2008년 10월 어느 날, 미국에서 온 언니의 동생과 밥을 먹는데, 동생이 갑자기 말했습니다. “나 이제부터 교회 다닐거야. 엄마가 뭐라고 해도 나가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나도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남편에게 전화해서 “교회에 가야겠어요”라고 말한 뒤, 그 주 수요예배부터 곧바로 출석했습니다

그땐 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 잘 몰랐습니다. 뭔가 징표가 있어야 하고, 확실한 뭔가가 꿈에서라도 나타나야 개종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동생의 고백을 듣는 순간, 도저히 교회에 다닐 거라 생각도 못한 제 동생의 마음을 움직이신 하나님, 죽음까지 생각한 힘든 삶 속에서 제 동생의 손을 잡아주신 하나님이 동생을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이 전해졌습니다. 동생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저도 교회에 다시 나갔습니다.

그런데 매주 전해지는 설교 말씀이 모두 나를 향한 말씀 같았습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평온한 마음이 들면서, 계속 눈물만 나왔습니다. 그런데 슬픔의 눈물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18년 동안 나를 괴롭힌 ‘가위눌림’이, 교회에 가기로 결정한 그 날부터 사라졌습니다.

곧바로 40일 새벽기도를 작정하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양초공예를 하다 손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병원에 갔을 때, 어린아이가 심한 화상으로 치료받는 모습을 보고 '내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 화상 상처 부위가 너무 깊어서, 피부이식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 날짜가 2주 후로 정해졌지만,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열심히 새벽기도에 참석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40일 작정기도가 끝난 후 병원에 갔더니, 그 전까지 딱딱하던 상처가 수술할 필요도 없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땐 제가 새벽기도를 하루도 안 빼먹고 열심히 나가서 나은 줄 알았습니다. 가장 두려웠던 가위눌림도 없애 주시고, 40일 기도가 끝나는 날 제 손을 치료하신 하나님. 모두 내 열심과 정성으로 이뤄진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믿음생활을 열심히만 하면 다 이뤄지는 건 줄 알았습니다. 불교에서처럼. “하나님,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의 열심, 정성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한량 없는 은혜였음을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손이 회복된 후, 병원에서 봤던 어린아이를 기억하면서 이듬해 '화상 환자를 위한 복음성가' 첫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모든 수익금은 화상 환자들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땐 선행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고, 복음성가를 부르시면서 찬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잘 부르려 했습니다. 믿고 나서도 2년간 그렇게 하면서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믿으면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리고, 세상 사는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드라마도 무조건 잘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의 동역자, 남편 최수종 장로와 함께

그러나 예상 밖으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안 좋은 일이 벌어지면서,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대인기피증도 생겼습니다. 모든 상황이 어려워졌습니다. 왜 이런 일어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짜증은 화가 되고 화를 억누르다 보니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기도도 나오지 않았고, 감사할 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원인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증이었기에,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도 못했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일로 그리 힘들어하냐고 할까봐 더욱 말하지 못했습니다. 제게 실망할까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게 쌓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강대교를 지나면서 '여기서 뛰어내리면 아플까? 죽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달리는 차 안에서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러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불안하고 집을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결국 화장대 앞의 차 열쇠를 집어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저앉아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 진짜 살아 계시다면 지금 저 좀 잡아주세요. 저 이대로 나가면 죽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진짜 살아 계시다면 저 좀 잡아주세요.”

울면서 기도하다 눈을 떴는데, 거울을 통해 본 내 눈빛이 낯설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 딸아, 나는 네 눈을 보면서 너를 보고 있는데, 넌 어디를 보면서 나를 찾고 있니?”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까지 한 번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나를 '내 딸'이라고 부르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정신없는 상태로 주저앉아 다시 기도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힘들어하던 일들이 필름의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뭔가 뜨거운 것이 터져 나오면서 회개기도가 시작됐습니다.

'내 아픔을 다 아셨구나. 날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기도로 하나님을 협박했는데도 ‘딸이라고 불러주신 주님!’, 그렇게 불러주신 것만으로도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감사하고 순종하면서, 그 시간을 버티며 지나가면 반드시 더 깊은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별명이 종합병원일 정도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아프지 않았다면, 건강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몸이 아픈만큼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결혼 후 네 번의 유산이 없었다면 부모가 되는 것이 축복임을 몰랐을 것입니다. 큰 아이가 몸이 약해서 응급실에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면, 아이의 건강이 소중함도 모른 채 세상과 타협하며 '학부모'가 돼 있었을 것입니다.

또 "18년 동안 가위눌림이 없었다면 하룻밤의 단잠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을 것입니다. 이련 당연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절실한 기도제목이 된다는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제 손에 화상을 입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화상 환자를 돕지도 못하고 우리 부부가 사후 인체·피부 조직기증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연약하고 못난 모습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교만하고 이기적인 기독교인이 돼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 지금은 제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됐다’고 믿고, 간증하며 찬양하지만, 또 다시 언젠가 주저앉을 때가 오리라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것도 분명히 압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힘들어하시는 분이 있다면, 저의 연약하고 부족한 고백들이 조금은 위로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힘들고 아픈 마음이 어떤 상황에도 변치 않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덮이기를, 꼭 승리하시기를 소원합니다.

[하희라 집사가 지난 2018년 5월 새에덴교회에서 간증한  내용입니다. 하 집사는 "간증은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어쩔 수 없이 제 이야기가 드러나기 때문"이라며, "제가 만난 하나님이 아니라, 제게 찾아오신 하나님을 나누고자 한다"는 말로 간증을 시작했습니다. '뉴스제이'가 전문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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