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칼럼] 해는 떴다가 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십자가칼럼] 해는 떴다가 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 나관호
  • 승인 2018.10.15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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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 목사의 행복발전소 13]

김창호 대원과 히말라야 원정대를 추모하며....
‘해 아래’ 모든 것은 헛되지만, ‘해 위의 삶’은 진정한 가치를 준다
해 위에서 보면 원정대가 남기고 간 발자취는 가치를 가진다

김창호 대원이 이끄는 히말라야 원정대는 신루트 개척을 위해 구르자히말 봉우리에 올랐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원정대는 눈 폭풍에 휩쓸리면서 급경사면 아래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강풍이 불어 닥쳐 대원들이 자고 있던 텐트를 수백미터 아래로 밀어냈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시신에 대한 운구를 마치는 대로 산악회 측은 유가족과의 논의를 거쳐 대원들의 합동 영결식을 진행할 방침입니다. 현지 수습대는 베이스캠프에서 1㎞가량 떨어진 곳에 있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나갈 정도의 강한 바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1분 1초 후를 모르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죽음 앞에 인간은 선택의 결정권은 없습니다. 그래서 히말라야 원정대의 안타까운 죽음이 아쉽습니다. 김창호 대원과 히말라야 원정대를 추모합니다.

▲ 김창호 원정대,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무산소 등정 성공한 몽벨에서     © 비투피캠핑
김창호 원정대,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무산소 등정 성공한 몽벨에서 © 비투피캠핑

히말라야 원정대의 허무하고 안타까운 죽음 앞에 금은보화 가득한 궁궐에서 일생 동안 권력을 누리며 살았던 솔로몬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돌아가고....”(전도서 1:2-5)

솔로몬 왕의 지혜서인 잠언과는 달리 ‘전도서’는 시작되는 몇 문장만 보면 마치 염세주의의 전형처럼 보입니다. 아비 다윗의 총애를 받아 스물한 살에 왕좌를 얻은 후 40년 동안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지혜의 왕 솔로몬이 허무주의였다는 말인가? 솔로몬이 왜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을까요?

옛적부터 전승되어 오는 유대인들의 고유한 풍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녀들을 위해 마련된 일종의 특별한 의식이며 만찬입니다. 그들이 읽는 책은 전도서입니다. 새해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희망가를 부르며 힘차게 출발해야 맞을 것 같은 새해 아침에 유대인들은 왜 전도서를 읽는 것일까요? 부러울 것 없이 가득한 모든 것을 누려본 사람이 말하는 서글픈 인생 독후감을 왜 읽는 것일까요?

그것에는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헛되지만 ‘해 위에서의 삶’은 진정한 가치를 준다는 것입니다. ‘해 아래’에서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이 목표로 삼는 명예, 권력, 부귀, 돈, 쾌락, 건강 등 모든 것이 얼마나 공허한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더 차원 높은 가치,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해 아래’서의 삶이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해 위’에서 내려다보는 가치관이 필요합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욕심이 사라집니다. 63빌딩에서 내려다본 주차장의 자동차나 주택들이 모두 성냥갑처럼 보이는 원리와 같습니다. 위에서 보면 존재만 보일뿐이다. 디테일한 자동차 브랜드나 아파트 평수는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해 위’에서 보면 ‘해 아래’의 삶은 존재일뿐입니다. 그런 존재가 가치를 가지는 것은 ‘해 아래’의 것을 ‘해 위’로 끌어올려 보면 됩니다.

우리는 생존의 전쟁터에서 무엇 때문에 발버둥치며 살아가는가는 것일까? 치열한 삶을 살기 위한 노력들이 가져다주는 유익이 무엇일까? 죽음 앞에 모든 것은 허상입니다. 그런 노력과 유익들이 해 아래에서는 순간일 뿐입니다. 그래서 ‘해 위’의 계획이 필요한 것입니다. 언제 시간 앞에 굴복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김창호 대원이 이끄는 히말라야 원정대의 히말라야 죽음은 해 아래서 허무처럼 느껴진다. 해 아래 시간으로만 보면 허무입니다. 그러나 해 위에서 보면 원정대가 남기고 간 발자취는 가치를 가집니다. 생명을 가졌던 동안, 산을 정복하며 살았던 그 시간, 그들로 인해 만들어진 부모님과의 따스한 시간, 그들이 만들어낸 인간승리의 역경, 가족들의 훈훈한 온정 그리고 친구와 동료들의 격려와 위로가 그것입니다. 그런 것만 남습니다. 그것이 해 위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이제 나를 보고, 이웃을 다시 돌아보아야합니다. 100년 동안 볼 사람들이 아닙니다. 내일까지 일지, 모레일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서로 헤어집니다. 시간만이 알고 있습니다. ‘해 위의 삶’은 다툼보다 용납을, 미움보다 사랑을, 누르기보다 살리기를, 돈 보다 사람을, 그리고 이기주의보다 이타주의를 만들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섬기며 사는 인생을 선택합시다.

성경은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맨몸으로 나왔으니 맨몸으로 돌아가게 되오리”(욥기 1'21)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예레미야 10:23)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시편 103:15)


나관호 목사 (치매가족 멘토 / 작가, 칼럼니스트, 문화평론가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기윤실 200대 강사에 선정된 기독교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전문가‘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뉴스제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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