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수님은 참된 안식이심” (히 4장 강해)
[설교] “예수님은 참된 안식이심” (히 4장 강해)
  • 윤사무엘
  • 승인 2022.05.1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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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자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자

히브리서4:1-16

요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윤사무엘 목사

주제: 예수님은 참된 안식을 주시기에 항상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교독문: 49번(시 108편), 예배의 부름: 수 1:7~9
찬송: 406장(통 464장), 405장(통 458장)
일자: 2020년 4월 26일 주일 (부활절 후 둘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오늘은 히브리서 4장을 강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연약을 체험하신 후 참 안식을 주시는 은혜의 보좌이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자(히 4:1-13)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분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여러분들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이는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3 왜냐하면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기 때문이라.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4 제칠 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 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기록하기를 ‘오늘날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8 만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분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쉬심과 같이 자신의 일을 쉬시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12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기 때문이니라.

 
1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앞장 히 3:18절과 연결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분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구원은 결국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죽은 성도들은 이미 그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 달려서 회개한 강도를 향해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3:43).

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 모두는 다 변화를 받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혹”이라는 말은 신앙을 고백하는 교인들 중에도 구원받지 못하는 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마치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의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우리 교회 가운데 그런 자가 없도록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2절에 보니 구원받은 우리도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믿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안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3절에 “왜냐하면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장차 하나님의 안식, 즉 영광스런 낙원에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도 영적으로, 심리적으로는 이미 하나님의 안식을 맛보고 있습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하십니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시 95:11을 인용하고 있는데 원어에서는 강한 부정의 뜻을 나타냅니다. 즉 “그들이 내 안식에 결코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뜻입니다. 또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는 말은 “하나님의 일이 마쳤느니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창 2:2의 말씀에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하나님께만이 참 안식이 있습니다. 6일간 천지만물, 인간, 에덴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창조해 주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람과 사람,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시켜주십니다. 이 안식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온전히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4절에 창 2:2에서 하나님께서 제7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절에 시 95:11에서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절에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4~6절에서 두 가지 진리를 보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복음은 죄로 말미암아 저주 받은 세상에서 수고로이 사는 인생들에게 안식의 기쁜 소식입니다. 둘째는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거기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은 구원의 길을 가로막습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사람은 자신의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에 구원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7절에 시 95:7을 인용하여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기록하기를 “오늘날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하며 만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고 합니다. 개역이나 개역 개정에서는 헬라어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Ιησοῦς) 대신에 여호수아라고 번역을 하는데 이는 예수님의 선재성을 약화시키고 구약에서 예수님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해서 그렇게 번역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만약 여호수아가 안식을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는 신학적으로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냥 원문 그대로 예수님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영원무궁전부터 무궁 후까지 계시는 유일하신 한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9절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예수님의 영원하신 팔은 천국의 영원한 안식의 모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감으로써 모형적 안식을 누렸을 뿐이지, 하나님의 영원한 참 안식을 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은 장차 천국에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안식할 때’라는 원어(삽바티스모스 sabbatismos)는 ‘안식의 상태’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곧 영원 전에 선택함을 얻고 때가 되어 부르심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은 백성들에게는 참된 안식의 상태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에서 누릴 평안입니다. 인생의 수고는 사람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로부터 왔습니다(창 3:17-19).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수고에서 구원을 얻고 평안과 안식을 정신적으로 이미 누리고 있고(마 11:28) 또 장차 천국에서 그것을 영육으로 풍성하게 그리고 영원토록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알버트 벤자민 심프슨(Albert B. Simpson 1843~1919) 목사님은 세계선교를 많이 하고 지원하는 The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C&MA)교단을 시작하신 분으로 미국 복음주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분입니다.

찬송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302장 “내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 보다 깊다” 135장 “어저께나 오늘이나 어느 때든지” 441장 “은혜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은사원한 내게” 472장 “네 병든 손 내밀라고”의 찬송시를 지으신 분입니다. 심각한 질병으로 고통 받을 때 흑인영가를 통해 육체와 영혼이 동시에 회복되는 체험을 통해 그의 설교가 더 깊어지고 치유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출판사를 세워서 40여년간 주간 잡지를 발행했고, 무려 10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했습니다. 심프슨목사님의 “안식”이란 시를 강화도 생명회복개발원 가까이에 있는 해돋음 찻집(이영범목사)의 칠판에 기록되어 있어 감동있게 읽었습니다.

“안식”

한 때 저의 두 손은 항상 바빴습니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 힘들여 일했습니다.
이제 제 가슴은 포근한 믿음 속에 있으며
제 영혼은 안식 속에 있습니다.

한때 저의 머리는 계획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제 가슴은 걱정으로 미어졌습니다.
이제는 저를 이끄시도록 주님께 의지합니다.
제 생명이 주님의 안식 속에 있습니다.

한때 저의 삶은 수고로 가득했습니다.
이제는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그분의 멍에를 메었기에
주님께서 저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 -심프슨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8~29)

10-11절을 읽습니다. “이미 그분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쉬심과 같이 자신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미 그분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예수님 믿고 죽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의 영혼은 지금 천국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눅 16:22, 25; 23:43).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됩니다(계 14:13). 또 사도 바울은 죽어 주와 함께 있기를 담대히 그리고 간절히 원하였습니다(고후 5:8; 빌 1:23).

11절은 1절부터 13절까지의 요약입니다. “그러므로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자”라고 권면합니다. ‘저 안식’은 이제까지 언급한 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안식 즉 구원을 통해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적으로 이미 받았고 장차 전인격적으로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입니다. 성도들은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성화는 우리 자신의 성실한 노력 없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물론 그러한 노력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을 지키고 거룩하게 살기 위해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벧후 1:10, “형제들아, 더욱 힘써 여러분들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여러분들이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합니다. 우리는 믿음과 순종으로 힘써야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옛날 이스라엘 선조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본에 떨어지지 않도록 늘 깨어서 믿음과 순종의 삶을 힘써야 합니다.

12-13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회복되고 안식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기 때문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고 활력이 있으며 우리 인간의 전인격(영, 혼, 몸)의 문제점을 진단하여 치유하며 회복합니다. 혼과 영, 관절과 골수, 마음의 생각과 뜻을 말씀만이 감찰하고 찔러 쪼개기 할 수 있습니다.

13절의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라는 원어(프로스혼 헤민호로고스 proshon heminhologos)는 ‘우리가 관계할 자’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 가지는 순종의 의무나 심판받을 의무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숨은 불신앙과 불순종을 남김없이 다 들추어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마땅한 의무에 대해 깨달음이 부족하여 게으르고 부족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부족을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의 숨은 생각과 뜻을 꿰뚫어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통해 내 인격이 온전해지며 참으로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2.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자(히 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분 곧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시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14절에서 승천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심을 다시 한번 더 언급하면서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자고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구약시대에 에녹과 엘리야를 통해 예표되었고 신약시대에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에서 증거됩니다. 행 1:9-11은 그것을 자세히 증거하는데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그분을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승천하신 신적 구주이신 큰 대제사장을 모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대제사장들과 비교할 때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사람의 본질을 가지고 있듯이,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말하는데 ‘믿는 도리’는 우리의 신앙고백의 내용을 말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인격과 속죄사역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는 도리의 가장 간략한 내용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나타나 있습니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우리가 매 주마다 암송하는 사도신경도 믿음의 기본적인 사실들을 담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우리가 믿어야 할 바에 대해 21번 문답에서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들의 유일한 구속자(救贖者)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분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셨으나 사람이 되셨고, 그래서 두 구별된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이시며 한 인격이셨고 또 영원히 계속 그러하십니다. 25번 문답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시키기 위해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리심으로써 그리고 우리를 위해 계속 중보 사역을 하심으로써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십니다.

15절에서 ‘동정하다’는 원어(쉼파데사이sympadesai)는 ‘체휼하다, 동감하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는 배고픔과 목마름과 피곤을 경험하셨고 미움, 비난, 욕, 배신, 매맞음, 그리고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까지 경험하셨습니다. 그분은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가 없으십니다. 그분은 참 사람(vere homo)이시며 또한 참 하나님(Vere Deus)이셨으므로, 그분의 인성(人性)은 신성(神性)의 도움과 보호 속에 무죄 상태를 유지하십니다. 실상, 그분은 죄가 없으셨기 때문에 죄인들을 위한 대속(代贖) 제물이 되실 수 있습니다. 죄인은 자신의 죗값을 받아야 하므로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한 제물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대속의 제물이 되기에 합당하셨습니다.

16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러므로’라는 말은 우리에게 크신 대제사장, 하나님의 아들, 승천하신 분, 우리의 연약을 동정하실 수 있는 분,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 계시기 때문에 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거나 연약하지 않았다면 이런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신적 구주를 주셨던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이라는 원어(에이스 유카이론 보에데이안 eis eukairon boedeian)는 ‘때를 따라 적절한 도움을 위해’라는 뜻입니다. ‘담대히’라는 원어 (메타팔레시아스meta parresias)는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이 필요한 때마다 그의 긍휼과 은혜를 얻기 위해 그분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확신 있게 나아갈 수 있고 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6절에서 은혜의 보좌란 지성소의 언약궤 뚜껑인 시은좌/시은소(Mercy seat)을 말하며 하나님의 영광 즉 쉐키나(Shekinah)입니다. 이 은혜의 보좌에서 대제사장이 온 제사장, 왕들, 지도자들, 백성의 죄를 대속하는 곳이며 용서받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새벽에는 불 구름기둥(pillar of fire and cloud, 출 14:24)이 쏟아나는 곳이 은혜의 보좌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있던 곳에 두 명의 천사가 하나는 머리부분, 하나는 다리부분에 있었던 모습이 은혜의 보좌를 두 천사(그룹)이 날개를 연하여 덮고 있는 모습입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 은혜의 보좌가 되신 것이고 언약궤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안식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께 담대히 나갑시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히브리서 4장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통해 안식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혼과 영과 몸이 새롭게 수술받게 하시며 은혜의 보좌가 되시는 예수님에게 담대히 나가 회개하고 치유받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2020년에 산 소망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매일 매순간 동행하게 하소서!
(2) 영생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예수님을 닮아 믿음, 소망, 사랑의 향기를 날리게 하소서!

4월27일(월) 찬송43장(통 57장), 44장(통 56장) 삼하6장 (다윗의 기쁨)
28일(화) 43장(통 57장), 44장(통 56장) 7장 (하나님의 집)
29일(수) 46장(통 58장), 49장(통 72장) 8장 (승승장구)
30일(목) 46장(통 58장), 49장(통 72장) 9장 (거부당한 은총)
5월 1일(금) 64장(통 13장), 67장(통 31장) 10장 (인간의 본질)
2일(토) 64장(통 13장), 67장(통 31장) 11장 (다윗의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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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신학교▣ (본교: Faith Christian University & Theological Seminary)의 2020년 4월 27일(월) 12주차 강의 :
1,2교시 성경해석학(윤사무엘), 3교시 창세기(이종훈), 4교시 테필린(김인자)

전화: 032-832-0287, 010-9113-1127, 010-4907-7483
총장 윤사무엘 박사, 학장 송인성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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