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형아 기다려! 큰형과 내가 당신을 잊지 않고 있어"
"작은형아 기다려! 큰형과 내가 당신을 잊지 않고 있어"
  • 정윤모
  • 승인 2020.01.22 2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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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이산가족 정윤모의 사는이야기 4]
해군방송선 납치사건으로 형이 북으로/
사랑하는 가족이 졸지에 사라진 것/
우리 형제들 인생 송두리째 바꿔버려
'해군방송선 I-2정' 납북 신문기사

【뉴스제이】 올해가 2020년 꼭 50년이 지났다. 1970년 6월 5일을 나는 잊지 못한다.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남쪽 꽃게잡이 어선들의 북상을 보호하기 위하여 ‘해군방송선 I-2정’은 그 날도 임무 수행 중이었다.

그날따라 해상에 안개가 낮게 끼었다. 우무 중에 불쑥 나타난 북한측 경비정과 교전을 벌여 승선인원 20명 중 몇이 사상을 당하고, 결국 배 전체가 북으로 납치되었다. 현장 상황을 나중에 신문 보도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 납치된 군인 중 한 명이 나의 형 해군 병장 '정광모'였다. 

당시 남북관계는 그 한해 전인 1969년 민간 여객기 ‘KAL기 납치사건’과 함께 연이어 터진 해군방송선 납치사건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이었다. 정부는 여러 번의 판문점회담을 통해 군사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북측에 강력 항의 하였고, 납치된 군인들을 당장 돌려보내라고 엄중 경고하였지만 속수무책으로 이제 50년이나 지났다. 

개인적으로 나의 사랑하는 가족 중 한 명이 졸지에 사라진 것이다 자랑스런 나의 형이었다. 사춘기 때 그렇게 말썽 피우다가 군에 가서, 다 늦게 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이 한 사건은 우리 형제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회색빛으로 바꿔버렸다. 이듬 해 아버지마저 일본 출장 당시, 간절한 마음이 앞서 조총련에게 자식 생사를 물어보다가 ‘국가보안법 반공법’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수형생활을 하셨다.

작은 형 생각하며 자전거 동해안국토종주 중, 정동진 916함 앞에서

이미 다 지나간 과거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피해 당사자인 가족들이 왜 잊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 형제들은 가족 중 한 명이 북에 있다는 죄(?)로 다 사회 그늘에서 요주의 대상 인물로 마치 '주홍글씨'가 찍힌 것처럼, 알게 모르게 감시당하고 피해를 보며 살았다. 부모님은 그 한 때문인지 일찍 돌아가셨다

이것도 요즘 누구 말대로 분단된 조국의 통일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 중 하나란 말인가? 대한민국 젊은 청년들이 목숨 걸고 지킨 NLL은 요새 쉽게도 무너지고 있다. 

이산가족의 한 명의 시각에서 통일은 반드시 북한주민을 위한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리만의 평화로 가자고? 어림도 없다. 나는 탈북민들을 만나면 모두 내 조카 같고, 형 소식을 좀 아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완전 폐쇄된 사회에서 살아온 그들이 그것도 오래된 얘기를 알리가 없지만.... 10명을 만나고 20명을 만나 물어도 '아마도 죽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살아있다면 언젠가 만나게 해주시라고. 그리고 형과 또 그 가족들을 만나 볼 수 있으리라고 소망하면서. 형이 살아 있다면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믿고 말한다. “작은형아 기다려! 큰형과 내가 당신을 잊지 않고 있어”

 

정윤모 안수집사 ( 국제 옵서버 / 담안선교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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