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
"고난의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
  • 뉴스제이
  • 승인 2020.01.1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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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UN·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헌신 중인 김영진 전 장관
시사메거진과 인터뷰 통해 ‘신년메시지’ 밝혀

김영진 이사장 (국회재단법인-3.1운동UN·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등재재단 이사장 / 5선 국회의원 / 전 농림부장관 / UN지속가능발전협의회 한국 대표의장 / 유네스코 아태지역교육의원연맹 초대 의장 / 광주대학 석좌교수 / 기념사업회 위원장 )

[대담자 - 시사매거진 김성민/김민건 기자]

“3.1운동이야말로 보수진보, 촛불 태극기, 여야를 초월한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극한의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3.1운동 당시 남북이 어디 있었으며, 여야 보수진보가 어디 있었고, 경상도 전라도가 어디 있었는가. 국제적인 도움과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로 뭉칠 수 있었기 때문에 3.1운동이 36년 동안 일제로부터 억압받았던 상황으로부터 극적으로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게 됐다"고 3·1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활동 중인 업무가 많으신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지내셨는지

제 마음은 원내에 있으나 원외에 있으나 항상 같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신앙적으로는 여전히 선교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오늘날 제가 있기까지 보내주신 많은 분들의 사랑을 이제는 내가 앞장서서 함께 나누고 공유하기 위해 나눔 봉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연세에 비해서 굉장히 건강해 보인다. 평소에 건강관리는

사실 그런 말을 다수의 분들께 듣는다.(웃음) 처음에는 덕담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문득 원내 시절 사진과 비교를 해보니 정말 얼굴이 좋아졌더라. 마음이 가벼워 져서 그런가보다. 농민을 대변해 시작한 저이기에 지금껏 배워 본 운동도 없어 그저 걷기 운동만 한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술과 담배를 해본 적이 없다는 점도 건강관리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현역시절 보다 오히려 더욱 바쁘신 것 같다. 더욱 바쁘게 활동하시는 이유나 계기가 있는지

현직을 그만두고 밖에 나왔어도 여전히 이 역할은 사명감이라는 짐을 지워주신 내 역할이고 이것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왔다. 혹자는 20년(5선)이면 지겹지도 않느냐고 하시지만 제게 있어 국회는 원외에 있어도 여전히 책임감을 다해야 하는 곳이기에 그러한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국회 밖에서 활동을 하다보니까 주로 시민사회단체나 해외에 있는 175개국의 750만 한인들의 현장 목소리를 더욱 자세히 접할 수 있었다. 현직에 있을 때부터 감사하고 소중한 우리 해외 동포 분들과 해당국가의 요직에 계신 분들께서 한국에 방문하실 경우 제게 미리 연락이 오곤 했다. 사실 해외동포들은 현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가장 가까이에서 민간외교 역할을 하는 우리 민족의 매우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방문하는 분들의 위상에 맞게 환영행사 및 공로패를 준비하곤 했다. 이는 곧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통일을 위해서라도 조력이 필요한 우방국가에 대한 예우라 생각한다. 그런 생각과 정신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거 자체가 계기이자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돌이켜 봤을 때 현역시절 가장 보람됐던 일과 가장 어려웠던 일을 꼽아본다면

1988년 13대 국회에 진출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 아버지는 당시 조선총독부에 끌려가 일본 군함도에서 종살이를 하시고 해방 후 극적으로 살아 돌아오셨다. 해방 이듬해 제가 태어났고 유년시절은 정말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었다. 심지어 강진군 일대에서 가장 가난한 집이 어디냐면 꼽을 정도였다.

그런 과정을 거쳐 국회에 들어갔기 때문에 당연히 제 맘속에 저를 뽑아주신 지역유권자들의 기대에 따라 이시대의 경제적 약자인 농어민을 대변했다. 우리 농민에서도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되어보는 그런 사람을 만들어보자 그게 유권자들의 기대. 당연히 1순위로 경제적 약자 서민의 자식들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제가 한번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갔기 때문에 13대 국회에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농수산위원회를 지망했다. 그러던 중 한번은 김대중 총재가 저를 부르더라. 통금금지해제운동, 소 파동 진상조사 등 농민운동을 하던 자네가 국회에 들어와서 통행금지해제 입법을 하는 과정과 소 파동 2조2천억에 대한 온갖 부채를 탕감 시키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은바 있다는 얘기를 하시는데 존경해 마지못하던 분께서 해주신 칭찬이기에 그 기분을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이후 김대중 총재께서 광주청문회를 나갈 준비를 하라고 하시더라. 그때는 이미 석 달 전에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판·검사들이 주를 이루던 때였다. “보름밖에 안 남았는데 제가 어떻게 갑니까”라고 여쭸더니 “그런 소리 하지 말아 자네 땅에 묻은 수입쇠고기 파헤치고 현장 조사하는 거 내가 다 봤네. 자네 광주 청문회 가면 잘 할 수 있을 거야”라고 하시더라.

그리고는 당시 비서실장을 위원회에서 빼고 저를 추천하셨다. 그래서 결국 청문회를 들어갔다. 그때가 공식적인 데뷔였다. 그때 불의한 계엄신군부에 의해 광주시민이 억압받고 한에 찬 삶을 살고 있을 때 계엄신군부에 대해 광주시민들이 정의로움 판결을 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오늘을 있게 했다. 그 활동을 제가 했다는 거 그것이 저의 큰 재산이고 감동. 감사. 나 같은 걸 믿고 써주셨기에 더욱더 감사했다.

3.1운동의 UN·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헌신 중인 김영진 전 장관

3.1운동 전도사라는 느낌이 강하다. 3.1운동 유네스코등재운동에 전념하게 된 계기는

과거 아시아태평양지역 교육의원연맹 의장을 맡은 일이 있다. 그때 유네스코에서 초청장이 왔다. 아시아태평양지역교육위원회 각국 의원들 중 야당1명 여당1명 이었는데 43개국이니 대략 90명 정도를 초청한 거다. 그리고 연맹을 창설했는데 초대 의장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선출되고 내가 초대 부의장이 됐다.

3개월 이후 유네스코에서 다시 소집을 해 가보니 초대 의장이 의원선거에서 낙마를 했다더라. 그리고는 관례법상 남은 3년의 임기동안 내가 의장직을 맡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신기하다. 그렇게 의장직을 맡은 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를 가서 업무보고를 받게 됐다.

난 그전까지 유네스코라 하면 문화유산과 자연유산만 있는 줄 알았다. 문화유산, 자연유산이 나오고 그 뒤에 세계기록유산이 나와서 뭔가 했다. 아프리카의 넬슨만델라 대통령이 나오시는데 27년간 감옥살이 하면서 정치보복을 당했고, 미국편은 당연히 흑인해방운동 마틴 루터 킹이 나오고, 그 뒤에 동아시아편이 나오는데 속으로 ‘아~ 동아시아 편이니 그래도 일제 36년 억압통치에 대해 비폭력 항거운동을 했던 우리 한국의 3·1운동이 나오겠구나. 그 다음엔 4·19혁명. 그리고 5·18민주화운동을 했던 그런 역사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한국의 역사는 안 나오고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만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놀래며 유네스코 의장에게 한국의 3.1운동에 대해 얘기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변이 이건 UN 차원에서 각국의 역사를 추적해서 정하는 것이 아니고 그 나라의 정부나 NGO단체가 자기의 역사를 정리하고 전문가들이 작업해서 심사를 한 뒤 각국에서 2년에 하나의 주제씩 올리는 거라고 답했다.

그 뒤 UN의 대표들이 재차 심사를 하고 현장을 답사한 뒤 해당 역사가 사실일 경우 선포를 한다고 하더라. 그러면 우리 한국은 3.1운동은(당시 92주년) 4.19혁명(당시 52주년) 5.18민주화운동(당시 29년) 인데 신청은 됐습니까? 물었다. 의장이 확인한 뒤 하나도 신청이 안됐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신청서 한부를 달라고 해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3.1운동 4.19혁명은 헌법 전문에도 나와 있지만 5.18민주화운동은 아직 헌법 전문에 안 들어가 있다. 일각에서는 배후설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 것처럼 아직 5.18은 국론이 분열되어 있다. 그래서 5.18을 먼저 유네스코에 등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5.18 당시 광주여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주소현 양의 일기장이 제출되었다.

그 일기장이 심사위원들에게 공개되고 ICA 심사위원들을 감동 시켰다. 이건 프랑스의 혁명사에 버금갈 정도의 비폭력 민주화운동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검증절차를 거치고 우여곡절 끝에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었다. 4.19혁명 등재 과정도 마찬가지로 여러 과정을 거쳤지만 각계가 같이 모여서 빛바랜 사진들을 모아 자료를 수집하고 국내심사가 끝난 상태이다.

제출하고 2020년에 국제 심사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이제 3.1운동이 중요하다. 명색이 100주년을 맞았는데 준비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그래서 등재신청기구라도 미리 만들자라는 취지에서 기구를 만들어 일하고 있다.

현재 정국이 대립전 양상을 띠고 있는데 정치 선배로서 후배에게 조언을 한다면

고난의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 저는 후배들이 비공식으로 자문을 요청하면 항상 이 말을 먼저 한다. 이 말은 바로 우리 선열들께서 우리에게 하는 말씀이시고 특히 한국정치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슴깊이 안고 조상들이 일궈놓은 3.1운동정신과 가치, 4.19혁명이라는 반민주적인 항거, 또 불의한 계엄신군부와 맞섰던 5.18민주화운동. 이런 역사의 현장에 정신적 기저와 근거를 가지고 의정활동을 하고 난 그래야한다고 본다.

지금의 우리 국회의 모습으로는 안 된다. 우리 역사를 빛나게 하고 빛나는 역사를 세계에 알려 공인된 유엔과 유네스코 등재에 함께 힘써 인정을 받게 하는데 모두가 함께 나섰으면 한다. 그리고 각 당에서 뜻을 함께한 이들이 먼저 각 지역에 우리 민족운동의 전도사 역할을 해 달라. 우리 역사를 주제로 하면 세대를 아우르고 지역을 초월해 뒤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여담이지만 3.1운동 유네스코등재기구를 준비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치입문 때부터 지금까지 당적을 이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적을 지켜온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여야 보수진보를 초월하자고 외치는 내가 당적을 가지고 있는 것부터 편향적인 시선으로 보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최소한 내가 3.1운동이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는 날까지 만이라도 당적을 내려놓는 게 맞다고 생각해 바로 실천에 옮겼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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