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망 설교] “산 소망으로 거듭납시다”
[산소망 설교] “산 소망으로 거듭납시다”
  • 윤사무엘
  • 승인 2020.01.0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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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벧전 1:1~25
요절: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5)
주제: 새해에는 산 소망 가운데서 말씀으로 거듭나서 거룩한 자가 되자

【뉴스제이】 올해는 성전이 정결함을 받게 되며 한반도의 회복이 시작된다는 전망도 나오며, 77억 세계 인구가 저출산 고령화로 산업인구의 감소, 4차 산업의 발달로 로봇개발, 인공지능, 융합 기술이 한층 속도를 내며, 4월에는 한국의 21대 국회의원 선거, 11월 3일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경제는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으며, 군사적 도발이나 전쟁도 국지전이 에상되며, 지진이나 화산폭발의 조짐도 어느 해 보다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도 날로 심각할 것이라고 합니다. 올해도 각종 질병, 환경병, 신종 불치병으로 늘 건강에 신경 쓰며 예방해야 합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즉 만반의 준비를 하면 환난을 면한다는 정신으로,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0: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wait upon)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not be weary)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not faint)” 말씀대로 하나님을 부지런히 바라보고 나아갑시다.

선교지에 가보면 선교사님들이 표어로 삼는 말씀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The Lord shall fight for you, and ye shall hold your peace.” (출 14:14)입니다. 모세가 앞에는 홍해바다가 가로 막혀 있고, 뒤에는 이집트 군대가 따라오는 가운데 60만 대군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권면한 말씀입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홍해바다를 열어주시고, 이집트 군대를 구름기둥으로 막아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라진 홍해바다 사이로 걸어서 출애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한해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고 우리를 대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나아가며 승리합시다. 목회도 선교도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내가 하는 일은 기도하며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소망을 가지면 됩니다.

모세의 지팡이를 물려받은 여호수아 장군에게 하나님께서 명하시기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then thou shalt have good success.)” (수 1:7-8) 성경에 단 한번 나오는 성공(good success)의 비결은 오직 말씀대로만 순종하고 나가면 됩니다. 새해에 우리 교회와 신학교 표어는 “산 소망이신 예수님만 바라봅시다! Let us look upon Jesus only, our lively hope!” (벧전 1:3-4)입니다. 일년 강해설교의 표제를 올해는 “산 소망 a lively hope”으로 정합니다. 소망의 인내로 무장하여 구원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공동서신인 베드로전서 1장을 통해 산 소망이신 예수님을 통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전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 형제, 자매들에게 산 소망이신 예수님을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심한 박해와 핍박 상황 속에서 소망을 가지고 믿음을 지키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But he that shall endure unto the end, the same shall be saved.”(마 24:13)

 
1. 산 소망과 믿음의 시련 (벧전 1:1~7)

1) 발신자와 수신자, 안부인사(벧전 1:1~2)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절)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함과 그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 수제자로 봉사하였고 주님께서 항상 데리고 다니시던 세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막 5:37; 9:2; 14:33). 바울이 이방인들 전도와 선교를 위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베드로는 잃어버린 유대인들을 위해 전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디아스포라 Diaspora=“scattered”) 유대인 성도들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위의 지역들은 오늘날 터키 지역에 해당하며 성도들을 ‘나그네’라고 부른 것은 우리의 본향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대상 29:15에 보면, 다윗은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조상과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미리 아심’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의 선택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으로 된 것임을 분명히 증거합니다(엡 1:4-5, 11).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둘째,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그분의 피 뿌림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그분을 따랐고 주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을 미워하며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린 자들입니다(눅 9:23; 14:26, 33). 그들은 오직 주님만 따르며 그분의 말씀만 따르는 자들입니다.

셋째, 성도들은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고전 6:11, “여러분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님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딛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분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주된 목적과 사역은 하나님의 택하신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죄인들은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밝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십니다. 이로써 성도는 죄악된 세상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을 주심(벧전 1:3~4)

3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서는 그 많으신 사랑대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우리들의 거듭남(중생, 重生)은 하나님의 전적인 그분의 사랑과 은혜로 된 것입니다. 또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새 생명을 확증하고 보증합니다. 하나님의 선택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도, 성령의 중생케 하심도 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결과입니다.

성도는 거듭난 즉 ‘산 소망’(a lively hope)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과 멸망이었고 거기에는 두려움과 절망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죄 씻음과 영원한 생명을 얻은 성도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 소망은 결코 헛되지 않은 산 소망인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다 썩고 더러워지고 낡아집니다. 그래서 시 102:26에서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그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상속자들인 것입니다(롬 8:17).

재난영화 《판도라》

2016년에 개봉한 《판도라》 영화를 최근에 보게 되었습니다. 제목에 흥미가 가서 보게 되었는데, 내용은 원전 사고에 대한 것으로 흥미진진한 것으로 감동이 넘치는 것이었습니다. 발전소 근로자에서 일하시던 아버지와 형이 방사능에 피폭되어 죽어가는 걸 본 후 발전소라면 치가 떨리는 주인공(강재혁)이 엄마와 형수, 어린조카와 소꿉친구 연주까지 먹여살리기 위해 시내에 나가 장사를 시작하지만 실패하고 취업 이민도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발전소에서 일하기 시작하던 어느날,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때부터 노후된 발전소에 균열이 생겨 냉각수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는데 간부들은 서둘러 근로자들을 투입시켜 냉각수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이미 수소까지 튀어나와 폭발되고 말았습니다. 주인공은 부지런히 부상자들을 구출하는 중 본인도 원폭 피해자가 되어 중상을 입게 됩니다. 이미 판도라 상자는 열렸습니다. 한 가지 희망은 방사능을 막기 위해 복구 작업을 하는데 누군가 한 명이 남아 밀폐된 한 방을 폭파해야 하는데 주인공이 나서서 이 일을 맡게 됩니다.

판도라 상자에 남은 희망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도 함께 죽고 문제도 해결해서 위기를 넘긴다는 내용입니다. 그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가족들(엄마, 형수, 여친)과 영상 통화한 내용이 전국에 방영되어 대통령을 비롯한 국민들에게 짙은 감동을 줍니다. 저도 이 부분에서 많은 눈물이 나와 계속 손수건을 적셔야 했습니다. “겁나 슬픔...내가 왜 죽어야되 ... 내가 뭘 잘못했어..흑흑..” 그리고 주인공은 폭발물의 단추를 누르고 죽음으로 원전사고가 근본 해결되었습니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모습이 온 국민을 감동하게 한 모습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온 인류에게 남은 희망이 되심을 연상케 한 장면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主神)가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불러 여자인간인 판도라(Pandora)를 출생하게 했답니다. 제우스는 판도라의 출생을 축하하며 상자를 선물로 주면서,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경고를 주었습니다. 판도라는 신 프로메테우스의 동생과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어느 날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결국 상자를 열고 맙니다.

그 상자 안에는 온갖 욕심, 질투, 시기, 각종 질병 등이 담겨 있었으며, 이것들은 판도라가 상자를 여는 순간 빠져나와 세상 곳곳으로 퍼졌습니다. 평화로운 세상은 금세 험악해지고 말았습니다. 판도라는 깜짝 놀라 급하게 상자를 닫았으나 상자 안의 나쁜 것들은 이미 전부 빠져나온 뒤였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었던 희망은 빠져나가지 않아서, 사람들은 상자에서 빠져나온 악들이 자신을 괴롭혀도 희망만은 절대 잃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의 악들이 최후의 심판에서 모두 정죄를 받고 둘째 사망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도라 상자 안에 있는 희망이 곧 재림하실 예수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면 올해 2020년에는 매 순간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산 소망”이신 예수님만 바라봅시다!

3) 예비하신 구원을 소망의 믿음으로 얻음(벧전 1:5~7)

5절)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6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절)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5절의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란 앞 절에 말한 천국을 가리킵니다. ‘말세에 나타낸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시에 나타내신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이 부활하여 영생을 누릴 천국은 주 예수님의 재림으로 영광스럽게 나타날 것입니다. 또 성도들은 이 놀라운 구원 곧 천국을 얻기 위해 지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그 능력의 보호하심이 이와 같이 확실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세상에서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을 당하며 잠깐 근심하게도 되지만 도리어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없어질 순금도 용광로 속에서 제련함으로써 나옵니다. 우리의 믿음의 시련은 금의 제련보다 더 귀합니다. 성도들은 환난과 시험을 통해 인격의 단련을 받아 거룩하고 겸손하고 믿음 있는 자가 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선행들을 많이 함으로 장차 예수님의 재림시에 ‘잘했다’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합니다(롬 5:3-4).

 

2.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 (벧전 1:8-12)

1) 믿음의 마지막은 혼의 구원임(벧전 1:8-9)

8절) 예수님을 여러분들이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절) 믿음의 결국 곧 여러분들의 혼의 구원을 받음이라(Receiving the end of your faith, even the salvation of your souls).

예수님 세번 부인하고 회개한 '베드로'

베드로가 편지하고 있는 소아시아 지방(오늘날 터키)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 성도들은 참으로 귀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으나 그분을 사랑하였으며, 지금도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그분을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증거와 사도들의 증거로 가능하였습니다(요 15:26-27).

이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였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가치를 알 때 그분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돈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돈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돈의 헛됨을 안다면 돈을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혼의 가치를 알 때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인격적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치를 알 때 그분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교제와 대화로 표현됩니다. 사람은 누구를 사랑할 때 그와 교제하고 대화하기를 좋아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를 좋아할 것입니다.

사랑은 특히 기쁨으로 표현됩니다. 사랑하면 기쁨이 생깁니다. 그래서 사랑하면 얼굴이 예뻐진답니다. 왜냐하면 기쁨이 생겨서 그런 것입니다. 기쁨이 있는 얼굴은 예뻐 보이지만, 근심과 슬픔이 가득하면 미워 보이기 마련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주님을 기뻐하였습니다. 찬송가 85장(통합도 85장)의 중세시대 경건 인물인 크레보의 버나드(1091-1153)은: “1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2 만민의 구주 예수여, 귀하신 이름은 천지에 온갖 이름 중 비할 데 없도다. 3 참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시고 구하고 찾는 자에게 기쁨이 되신다. 4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 다 말하랴? 주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5 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 기쁨 되시고 이제와 또한 영원히 영광이 되소서.”

믿음의 목표는 혼의 구원입니다. 우리의 혼은 지정의의 영역으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그의 대속 사역으로 인해 그분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의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선한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길을 주셨습니다.

2) 구약의 대언자들이 증거하는 그리스도(벧전 1:10~11)

10절) 이 구원에 대하여는 여러분들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대언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그분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분의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살피느니라.

구약시대의 대언자들에 역사하셨던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분께서 장차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였으므로, 대언자들은 그것이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연구하였습니다. 구약시대의 대언자들 속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영의 고난에 대해서 사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또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때와 시기를 연구했다는 것은 단 9:24-26에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7x70)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義)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令)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이레(7x7)와 육십이 이레(62x7)가 지날 것이요 그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성 밖에 둘러 판 못이 이룰 것이며 육십 이 이레(62x7)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파괴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몰사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70이레의 기한에 관해,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이레(7x7)와 육십이 이레(62x7)가 지날 것이요”라는 말씀은 음력으로 69이레 즉 483년을 양력으로 환산하여(470년), 예루살렘 성의 중건을 허락받았던(느 2:5-6) 페르샤 왕 아닥사스다 20년(느 1:1)인 BC 502년으로부터 계산하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무렵이 된다고 봅니다.

3)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함(벧전 1:12)

12절)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여러분을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님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여러분들에게 이른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구약 대언자들이 예언한 내용이 신약 성도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드러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예언의 성취자로서 나타나신 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님을 힘입어 복음 전도자들이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전파한 것입니다. 또 하늘의 천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보기를 원한 것이었습니다.

 
3. 거룩과 사랑을 권면함 (벧전 1:13-25)

13절)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오직 믿음으로 받았으므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야 합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는 말은 나태하고 해이하거나 정신없이 살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는 태도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 곧 하늘에 간직된 기업이며(4절)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가리킵니다(5절).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임할 천국과 우리의 몸의 부활과 영생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소망을 거기에 두어야 합니다.

14-16절) “여러분들이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여러분의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여러분을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우리는 이전에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알지 못했던 때 좇던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욕망을 본 삼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에서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가 불순종적이고 불결한 삶을 살았었으나, 이제는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친히 말씀하셨다(레 11:45).

17절)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여러분이 아버지라 부른즉 여러분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우리는 사람들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들이 되었으므로 나그네와 같은 세상 생활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향은 천국입니다.

18-19절) “여러분들이 알거니와 여러분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救贖)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속죄 신앙 없으면 구원받는 참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복음의 기본적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 우리를 구속(救贖)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은혜를 입은 우리이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20-21절) “그분은 창세 전부터 예정된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여러분은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여러분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중에서 살리셔서 부활의 영광을 주셔서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두어야만 한다.

22절) “여러분들은 성령님으로 진리를 순종함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깨끗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성도는 깨끗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다운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1장의 결론 말씀처럼 23-25절에 “여러분들이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우리가 얻은 거듭남의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으로 되었습니다.

그 구원의 생명은 실제로 거룩한 순종과 뜨거운 사랑으로 계속 나타납니다. 모든 육체는 풀같이 쇠하고 그 모든 영광은 꽃같이 다 떨어질 것이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은 쇠하거나 없어지지 않고 영원합니다(사 40:6~7) 성도들을 위해 하늘에 간직된 기업 즉 천국은 썩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는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산 소망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새해를 살기 원합니다. 매일 매순간 주님만을 기쁨과 소망으로 삼게 하시며 예수님 이름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대한민국을 주님의 말씀위에 새롭게 서게 하시며,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며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세계선교회 및 성경연구소 대표 / 겟세마네장로교회 담임 / NYSKC (예배회복운동)학회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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